도쿄의 어느 미술관에서 우리는 허리를 숙여야 했다

[arte] 임지영의 예썰 재밌고 만만한 예술썰 풀기
그림을 낮게 건 이유, 도쿄 미술관 여행
필자 제공
우리는 미술관에 왜 가는걸까? 가장 느린 속도로 걷기 위해, 삶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고 책에 썼다. 예술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예술 앞에 선 우리가 진짜 위대한 거라고도 썼다. 예술 향유는 특별한 게 아니라고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부르짖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여기저기 외치고 다닌 효과가 조금은 있어 퍽 많은 사람들이 예술 향유자가 됐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느리게 걷는 미술관 도쿄 예술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미술관들에 명화가 즐비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도쿄를 중심으로 미술관만 6군데 감상했다. 첫날 방문한 DIC 가와무라 기념 미술관에는 마크 로스코의 압도적인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로스코의 의도대로 조도를 잔뜩 낮춘 전시실, 그림 앞에 가만히 서있노라면 깊은 심연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스탕달 신드롬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는 단순히 그림만 보고 나오는 게 아니다. 미술관에 오래 머물고 충분히 느끼며 그곳에 있는 카페에서 식사도 했다. 둘째날 갔던 네즈 미술관은 시공간 자체가 예술이었다.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이며 한지 창으로 어울지는 그림자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미술관마다 순간의 감흥을 휘발시키지 않기 위해 응시와 기록을 함께 했다. 내 마음의 그림 한 점을 발견해내고 반드시 짧은 영감을 길어 올려야 했다. 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함께 참여했다. 각자 고른 그림과 글을 보여줬을 뿐인데, 삶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눈을 반짝이며 살아온 날들을 경청했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마음이 들리고 만져졌다.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모두 친구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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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도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다. 콘텐츠를 어떻게 기획하고 가공할 것인가 머리를 쥐어 짜야 한다. 일본의 미술관들은 일단 보유한 소장품 자체가 엄청났다. 이를 잘 활용하여 전시를 하고 새로운 기획도 흥미진진했으며 미술관 전체를 삶의 환경으로 만들었다. 미술관을 돌며 처음엔 와! 놀라다가 점점 부아가 치밀었다. 이 방대한 명화들과 작품의 구성과 유지 또한 입이 떡 벌어진다. 일본의 미술관들을 둘러보다가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이런 작품들을 잔뜩 볼 수 있어 기뻤다가 자주 볼 수 있는 이들에게 샘났다가.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 갔을 때다. 모네, 마네, 피카소, 구스타브 쿠르베, 라울 뒤피, 장 뒤뷔페 등 서울에서 특별 전시들로 만났던 작품들이 다 모여있었는데 동행들의 감탄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비슷하게 감정 기복을 겪는 것 같았다. 너무 좋은데 너무너무 질투가 나는.

그런데 각 전시관마다 아주 낮게 걸린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이상했다. 예술 앞에 무릎 꿇으라는 건가. 나중에 알게 되고 너무 깜짝 놀랐다. 어린이와 장애인을 위해 일부러 눈높이를 낮춰 걸어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휠체어를 탄 이들이 많이 보였다. 미술관엔 휠체어와 자원봉사자가 늘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휠체어를 느리게 밀다가 탄 분이 손을 들면 그 그림 앞에 멈춰주고 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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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예술 향유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외치기만 한 게 부끄러워졌다. 이토록 구체적인 배려 앞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예술은 향유가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도 장애인도 노인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필수 환경 같은 것. 일본은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환경을 만들었다.단순히 아름다워서 미술이 아니다. 삶과 죽음, 그 너머까지 더듬고 어루만지는 눈동자의 빛을 만들어주는 것이 미술이다. 이번 예술 여행에는 유독 가족팀이 많았다. 부부, 모녀, 모자 등 예술을 통해 관계의 밀도가 달라졌다. 특히 6학년 남자 아이의 그림과 글은 모두를 놀래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 한점 발표에서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아름답고도 애잔한 뒷모습 그림을 가져온 것. 그리고 이렇게 쓰고 발표했다.
빌헬름 함메르쇼이 <피아노 연주하는 이다가 있는 실내 풍경> (1910년), 캔버스에 유채
이 그림 속 이다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느껴졌다.
식탁에 있는 하나뿐인 접시도 외로움을 더 커지게 했다.
그래서일까?
빛을 비추는데도 어둡게 느껴졌던 것이!
아니면 들어오는 빛을 외면해버린 것일까.

소년은 수많은 명화 속에서 이 그림의 외로움을 알아챘고, 인간 본연의 깊은 고독을 통찰해내고 있다. 그것을 짧은 글로 정확하게 표현했고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네가 고독을 알아? 기특한 진심의 박수가 터졌다.

예술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여긴다. 성장을 원하는 사람은 작은 단초도 놓치지 않는다. 기회로 삼는다. 그리하여 그림 한 점도 운명으로 만든다. 아름다운 미술관과 세계 명화가 말 그대로 널려있는 일본이 부러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미래의 명화를 만들 역량이 있다. K pop처럼 K art의 시대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예술로 떠난 길은 결국 사람에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느꼈는가가 중요하고, 누구와 나누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만났고, 통했고, 끈끈하게 이어졌다. 사랑한다, 외롭다, 힘들다 고백했고 완벽하게 위로받았다. 서로의 삶을 깊이 꿰뚫어볼 때 우리는 더 낮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림도 더 낮게 걸 수 있을 것이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