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패륜아도 상속받는 민법, 47년 만에 대수술

유류분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윗줄 가운데)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패륜적 행위를 일삼은 부모나 자식에게도 유산을 물려주도록 강요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유류분(遺留分) 제도가 47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유류분 관련 민법 조항들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류분 제도의 헌법적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달라진 시대상에 맞게 세부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유산 독차지’ 방지…1970년대 도입

사람이 재산을 남기고 죽으면 가족 구성원들에게 우선순위에 따라 법정상속분이 부여된다. 유언이 없으면 법정상속분에 따라, 유언이 있으면 유언에 따라 재산을 배분한다. 그런데 고인이 유언을 남겼더라도 가족 개개인에게 일정 비율만큼은 꼭 물려줘야 하는데 이를 ‘유류분’이라고 한다.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남은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1977년에 도입됐다.유류분 제도의 근간인 민법 제1112조는 고인의 자녀와 배우자에게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와 형제자매에게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반드시 물려주라고 정했다. 예컨대 배우자, 아들, 딸이 한 명씩 있는 A씨가 7억원을 남기고 사망했다면 A씨가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줬더라도 배우자와 딸은 소송을 내면 각각 1억5000만원과 1억원을 무조건 받을 수 있다. 가부장제 가치관이 팽배하던 시절 여성 등이 상속에서 소외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혈연으로 이어지기만 하면 상속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부작용도 있었다. 자녀를 학대하거나 유기한 부모, 배우자를 때린 가정 폭력범, 천륜을 저버린 자녀도 일정 비율 이상의 재산을 예외 없이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2019년 가수 고(故) 구하라 씨가 사망한 뒤 오래전 가출한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류분 제도에는 다른 쟁점도 많았다. 가족 간에도 고인을 보살핀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하는지, 고인이 사망 전 증여한 재산도 사후 유류분 다툼의 대상이 되는지, 현대사회에서 사실상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는 형제자매에게도 유산을 반드시 줘야 하는지 등이 문제가 되곤 했다. 개인이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국가가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제도 정당성은 인정…시대 변화 반영 요구

지난달 25일 헌재는 민법 제1112조 1~3호와 제111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에 2025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라고 했다. 패륜적 자녀와 부모에게는 유류분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부모를 오래 부양했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한 자녀에게는 상속에서 혜택을 줄 수 있도록 법을 보완하라는 취지다. 헌재는 고인의 형제자매에게도 유류분을 인정한 민법 제1112조 4호에는 위헌 결정을 내려 즉시 무효로 만들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헌재 결정에 따라 오는 6월에 개원하는 제22대 국회는 내년 중 대체입법을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상속제도 전반에 대한 개정 움직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법원에 계류 중인 유류분 청구소송은 수천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