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공부합시다] 무분별한 화폐발행이 국가 경제 파탄으로 몰고가

테샛 경제학
(151) 초인플레이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이 나라는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8위)를 제치고 2022년 연간 고통지수 1위에 올랐습니다(2023년 스티브 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 교수 발표). 국민 경제가 얼마나 힘들기에 전쟁 중인 나라보다 순위가 높은 걸까요?

100조 달러 지폐가 있다고?

비극의 시작은 1987년 대통령이 된 로버트 무가베의 경제정책입니다. 1990년대 토지개혁으로 짐바브웨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던 백인 농장주들의 땅을 강제로 몰수해 국민에게 나눠줬지요. 하지만 기술력과 자본을 보유한 백인 농장주가 떠나자 농산물 생산은 곤두박질쳤습니다. 이에 따라 식량이 부족해지고 각종 생필품 가격은 상승했지요. 무가베 대통령은 돈을 뿌려서 국민이 필요한 물건을 사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통화를 무한정 발행하는 정책을 펼쳤지요.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통화량을 늘리면 그만큼 물가가 상승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화폐를 무분별하게 발행하면 화폐가치는 하락하지요. 짐바브웨도 화폐 찍어내기로 각종 제품 가격이 브레이크 없이 상승했습니다. 2008년 말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897해%였다고 합니다. ‘해’는 0이 20개가 붙었을 때의 단위입니다. 그러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숫자가 지폐에 찍히기 시작했죠. 2009년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사진)의 발행이 당시 상황을 보여주죠.

리디노미네이션과 무너진 화폐 신뢰

국민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근로자들은 월급날 상점으로 ‘오픈런’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 때문에 지금 당장 물건을 사둬야 했기 때문이지요. 화폐가치는 종잇조각에 불과해 엄청난 양의 짐바브웨 달러를 수레에 실어서 물건값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수레를 훔쳐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실물자산을 더 선호했습니다. 국민은 월급을 받아도 실질임금은 마이너스(-)였기에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지요. 100조 달러로 살 수 있는 것이 달걀 3∼4개가 전부일 정도로 국민 생활은 비참했습니다.물론 정부도 이에 대응해 화폐의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여러 번 단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1000원을 1원으로 바꾸는 것이죠. 하지만 화폐 단위를 변경한다고 무너진 짐바브웨 달러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통화가치 하락이 더 가팔라졌지요. 결국 2009년에 짐바브웨 정부는 자국 화폐 사용을 포기하고 미국 달러화 등을 법정통화로 채택하면서 100조 달러 지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난달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새 화폐 짐바브웨 골드(ZiG)화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도 짐바브웨 달러를 도입하는 데 실패했지만, 골드화를 발행함으로써 자국의 화폐 경제를 다시 공고히 하려는 모습이죠.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통화정책이 국가경제를 어떻게 몰락시키는지 짐바브웨를 통해 탐구해볼 수 있습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