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에스프레소, 와룡동 세컨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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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진의 공간의 감각이탈리아에는 20세기가 다 되어서도 바(Bar)가 없었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1898년 알레산드로 마나레시(Alessandro Manaresi)가 이탈리아 최초로 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다른 국가들의 바와 다르게 커피와 술, 먹거리를 잡다하게 파는 이탈리안 바에 대해서, 혹자는 그 어원이 휴식의 테이블(Banco A Ristoro)의 앞 글자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바에는 아직 에스프레소가 없었다.
와룡동 세컨드 커피
반자동 머신을 통해 안정적인 압력으로 만들어지는 현대적인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완성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탈리아에 일식이 일어났던 해인 1961년 페마(Faema)社의 에르네스토 발렌테(Ernesto Valente)가 전기를 사용하는 최초의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e61을 발표한 이후다. ‘e61’이라는 이름은 일식과 1961년도를 뜻한다.이로부터 1년이 지난 1962년에는 이탈리아 의회에서 ENEL(Ente Nazionale per l’Energia Elettrica) 설립 법이 통과돼, 전체 인구의 절반도 누리지 못했던 전기의 혜택을 이탈리아 전역에서 누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전기가 일상이 될 무렵에 탄생한 ‘e61’은 빠르게 현대 에스프레소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바의 모습은 1960년대가 되어야 완성된 형태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전기의 보급과, 전후 경제 호황으로 빨라진 생활의 속도가 이탈리아를 에스프레소의 왕국으로 이끈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그 실체를 마주했을 때 충격을 받기도 한다.
세월을 따라 낡은 바에 선 바리스타는 제대로 닦지도 않은 포터필터에 미리 갈아놓은 커피를 한 뭉치 덜어놓고 탬핑을 하고, 몇 초도 흐르지 않아 콸콸콸 잔에 흐른 에스프레소를 덜커덕 소리를 내며 던져주듯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스프레소 바는 고매한 전통의 공간이라기보다, 생활에 밀착된 커피 문화가 만들어낸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금융위기와 세기말의 음울함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는 시절, 우리나라에도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시대가 열렸다. 가장 먼저 상륙을 선언한 브랜드는 라바짜와 일리로, 각각 97년, 98년에 우리나라에 매장을 열었다. 곧이어 세가프레도를 비롯해 무세띠, 마우로, 파스쿠찌 등의 브랜드가 연이어 매장을 열었다. 바야흐로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춘추전국 시대였다.
세컨드 커피의 대표 김정회가 처음으로 반자동 머신에서 내린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를 마신 것도 그즈음, 역시나 이탈리아 브랜드인 ‘아르카페’의 ‘고르고나 블렌드’로 만든 커피였다. 바리스타의 설명을 듣고서는 설탕을 넣고 휘휘 저어 꿀떡 마셨는데, 커피가 이렇게나 달콤할 수 있었나 싶었다. 이것이 김정회의 첫 번째 커피였다.모든 유행이 그러하듯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전성시대도 짧게 지나갔다. 김밥천국만큼 카페가 흔한 이탈리아에서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머리가 아픈 일이었는데, 우리나라에 상륙한 브랜드들은 모두가 ‘정통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라고 주장했으니 사람들도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나 헷갈리는 것 같았다.더군다나 생활로 자리 잡아 가격이 통제된 이탈리아와 달리, 우리나라의 에스프레소는 상대적으로 고급문화로 인식돼 꽤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여기에 수많은 에스프레소 바를 유지할 만큼의 소비 인구가 없으니 시장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몇몇 브랜드는 원두 유통권만을 유지한 채 매장을 접었고 또 어떤 브랜드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김정회가 문을 두드렸던 카페 무세띠도 입사 수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그렇게 첫 번째 커피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는 듯했다.
두 번째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인베이젼(Invasion)’은 2017년 약수동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문화에 영감을 받아,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리사르 에스프레소바’가 문을 연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재설계한 블렌드와 직접 개발한 메뉴는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번져나갔다. 커피산업의 성장, 취향의 세분화와 더불어 해외에서 맛본 에스프레소가 어색하지 않은 세대가 시장을 견인했다.
그렇게 여기가 이탈리아인지 서울인지 헷갈릴 정도로 어디에나 에스프레소 바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유행도 저물기 시작했다. 리사르 커피처럼 제 색깔을 가진 몇 업체들만 주도권을 가져가, 커피 업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장르로 남았을 뿐이었다.‘에스프레소 바’의 정통성과 전통을 따지는 일은 애매하고 어려운 일이다. 서울의 에스프레소가 정통과 전통 그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때 즈음, 김정회 바리스타는 스페셜티 커피를 기반으로 한 제3의 물결을 맞아 커피 업계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고 실력을 길렀다. 한때 ‘바리스타 사관학교’라고 불리웠던 카페 뎀셀브즈 근무하기도 했고, 2010년과 11년에는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는 등의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바리스타가 서른이 넘으면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2013년 마음으로 수유동 화계사 인근에 매장을 열었다.
69년식 낡은 프로밧 로스터를 두었고 에스프레소 머신은 페마 E61을 사용했다. 누구나 언제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그간의 경험을 살려 블렌드를 설계했다. 튀지 않지만 우아한 산미가 느껴졌고 우유를 타면 단맛도 살아 올랐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도, 절에서 내려온 스님도, 지나가는 대학생도 모두 만족시키는 맛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만들어낸 두 번째(Second) 커피는 모든 이의 취향이 담겨있었다.그리고 2021년에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세컨드 커피를 선보이고자 와룡동(율곡로)에 일종의 브랜드 쇼룸의 역할을 하는 두 번째 매장이 문을 열었다. 에스프레소 메뉴가 중심이 된 매장이라 ‘에스프레소 바’라고 칭할 법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딱히 이탈리아의 스타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곳에서 맛볼 수 있는 커피는 김정회가 처음 맛봤던 그 맛있었던 에스프레소 한 잔에서 출발해 20년 가까이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생각하며 만들어낸 맛이기 때문이다.
매장에 준비된 블랜드는 모두 3가지 종류다. 중배전부터 원두에 기름기가 배어 나올 정도로 강하게 볶아낸 것이 있는데, 배전도와 상관없이 모두 강하지 않고 우아한 산미를 드러낸다. 모든 이의 취향을 무난하게 만족시키면서도 스페셜티 커피에서만 찾을 수 있는 섬세한 결이 있다.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서울 시내 고급 호텔에서는 외국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기에 바빴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에스프레소를 찾는 이들은 다들 각자의 나라로 떠났고, 머신은 우유를 스팀하기에만 바빴다. 미약하지만 그때를 우리나라 에스프레소의 출발로 생각한다면, 우리에게도 30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 세컨드 커피나 리사르 커피를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바’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좋은 커피에 대한 기억으로 부단히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으니, 이제는 이탈리아에 견줄만한 서울의 에스프레소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