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 아침도 아니지만 해는 떠올라…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입력
수정
제 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올해 25회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 1일 수요일에 개막을 알렸다. 올해 영화제는 미야케 쇼의 <새벽의 모든>을 개막작으로 선정, 상영했다. 2012년 데뷔작 <플레이백>으로 작가 감독으로서의 존재를 성공적으로 증명했던 미야케 쇼 감독은 그다음 작품, <와일드 투어>에서 연출을 비롯해 각본, 촬영, 편집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미야케 쇼의
각자의 병 앓는 남녀의 만남과 관계
작은 서사로 전하는 창대한 메시지
현재 그는 류스케 하마구치 감독과 함께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라이징 감독이다. 2020년에는 세 남녀의 관계를 그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로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31회 도쿄국제영화제 그리고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등에 연이어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2023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작품,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호평을 받았던 쇼의 전작들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찬사를 얻어내며 미야케 쇼의 작가적 위치를 확고히 한 작품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엔카운터 부문을 필두로, 키네마 준보에서는 영화를 1위에 랭크시키며 2022년 가장 주목할 영화로 꼽았다.
그 외에도 독자 선정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까지 영화상에서 가능한 모든 영예를 얻어냈다. 일본 아카데미에서는 주인공 케이코 역의 배우 키시이 유키노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다.미야케 쇼의 영화는 인물과 공간을 ‘전시’하듯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섬세하게 그려진 정물화처럼, 혹은 투명하고 말간 수채화처럼, 그의 영화는 서사와 이미지의 역동(力動)보다 대사와 뉘앙스의 의미 있는 정렬이 특징이다. 따라서 미야케 쇼의 영화는 마치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듯, 섬세하게 ‘지켜보고’ 관조하는 시선이 적합하다. 이번 개막작, <새벽의 모든> 역시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두 남녀 캐릭터와 그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서정적이고 세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세오 마이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PMS(월경 전 증후군)를 겪고 있는 여자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를 갖고 있는 남자 ‘야마조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극단적인 PMS 증상으로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후지사와는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한다. 곧 다가올 증상에 대비해 후지사와는 갖가지 간식과 선물로 동료들의 환심을 사려 하지만 유독 야마조에는 그녀를 차갑게 대한다. 그렇게 서먹함이 계속되는 가운데 후지사와는 야마조에가 공황장애로 시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야마조에도 후지사와가 일으킨 급작스러운 히스테리로 그녀의 질환(?)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는 두 남녀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리지만 이들이 나누는 것은 로맨스도, 우정도 아니다. 마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세 남녀가 그랬듯, 이번 작품의 캐릭터 관계 역시 세속이 정한 관계적 분류에 넣을 수 없는 미묘하고도 심오한, 그러나 분명 애정 어린 감정을 공유한다. <세상의 모든>에서 이러한 감정은 그들이 독특한 병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다. 대부분의 일상을 정상인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약간의 비정상성이 인생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고 있는, 그렇기에 희망도 절망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쉼표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공통점은 이들에게 서로를 향한 단순한 공감을 넘어 연대와 의지, 애정과 배려를 수행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둘의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야마조에는 이직을 준비 중이고, 현재의 회사 구성원들을 하찮게 여기는 인물이었지만 후지사와에게 치유를 받고 치유를 해주면서 주변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다. 미야케 쇼는 개막작 상영 후 기자회견에서 이들 병의 공통점은 ‘치유가 오래 걸린다는 점’이고 그 점이 이들의 생활 태도와 세계관을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 궁극적으로 영화의 말미에서 이들은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은 채 ‘쿨’하게 이별한다. 후지사와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러, 야마조에는 이제는 의지 할 수 있게 된 이 작은 회사에 남기로 한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서로에게 치유를 받고, 다른 이에게 그 온기를 전하는 행보를 택한 것이다. <새벽의 모든>은 작은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창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과연 지역 공동체와 구성원의 공존을 축하하는 축제 중 가장 의미 있는 행사인 영화제의 얼굴로 부족함이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