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누가 입어" 했는데…中 할머니부터 장원영까지 '대박'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43회

명품 소비 침체 속에서 미우미우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몇 년 전 가수 비의 노래 '깡'이 큰 화제가 됐다. 이 노래는 앨범 발매 당시엔 혹평을 받아 실패한 곡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3년여 만에 한 여고생의 패러디 커버 영상을 통해 재조명되면서 당시 가장 핫한 '밈(Meme·특정 콘텐츠를 대중이 따라하고 놀이로 즐기는 현상)'이 됐다. 유치한 가사, 안무 등을 풍자한 ‘1인1깡’ 신드롬에 비는 제2 전성기를 맞았다.

밈은 좀처럼 젊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일이 없을 것 같던 60~70대 중년배우도 SNS 스타로 만들었다. 2000년대 초중반 드라마 ‘야인시대’와 영화 ‘타짜’에 출연한 배우 김영철과 김응수는 작품 속 대사인 “4딸라”와 “묻고 더블로 가”가 10년이 훌쩍 지난 뒤 밈으로 탄생하며 유명세를 탔다. 최근엔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노랫말 밈 열풍이 불면서 이 곡을 부른 가수 비비가 뜨는 것은 물론 먹는 ‘밤양갱’까지 불티나게 팔렸다.
독일 한 유명 인플루언서가 미우미우 세트를 입은 모습. 사진=SNS 캡처
밈은 철지난 명품도 유행 상품으로 띄운다. 글로벌 패션업계에선 ‘미우미우 밈’이 화제다. 2022년 미국 뉴욕의 한 여고생이 전년 파리패션 위크에서 소개된 미우미우의 Y2K 패션에 반해 이 스타일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계정(@miumiuset)을 만들면서 밈이 확산했다. 주머니가 치마 아래로 삐져나올 만큼 짧은 미니스커트를 골반에 걸쳐 내려 입고, 상의는 과감하게 잘라낸 크롭티(배꼽티) 패션을 전세계 젊은 여성들은 물론 나이든 여성도, 심지어는 남성도 비슷하게 입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식이다. 2000년대 초반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에이브릴 라빈 등이 Y2K시대 팝스타들이 입을 법한 스타일인데, 일명 ‘미우미우 세트’로 불렸다.
미우미우 세트를 입은 여성들. 사진=마리끌레르 캡처

"오늘 가족보다 미우미우를 더 많이 봤어"

그 해 미우미우는 패션계에서 그야말로 히트를 쳤다. 제품이 매장에 깔리기도 전에 SNS에서는 미우미우 세트를 검색하는 쇼핑객이 폭주했다. 글로벌 쇼핑 플랫폼 리스트(Lyst)에 따르면 2022년 봄 ‘미우미우 미니 스커트’ 검색량은 3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영국 명품 전자상거래 사이트 매치스패션에서는 카멜색 미니스커트(당시 950~1150달러)가 출시되자마자 3일 만에 품절 대란이 일었다. 프라다보다 약간 저렴한 세컨 브랜드, 입문용 명품 정도로 알려졌던 미우미우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미우미우 룩을 보는 나' 라는 타이틀 아래 한껏 질려버린 남성의 사진을 합성한 글. 미우미우의 유행을 풍자한 일종의 '밈'으로 게시글이 올라온지 몇 시간도 채 안돼 좋아요 5000개를 달성했다고 한다. 사진=SNS 캡처
미국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여성들은 미우미우 제품을 살 돈이 부족하면 비슷한 제품을 리폼해 직접 만들어서라도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틱톡에 올렸다. SNS에선 누가 더 일상에서 미우미우 스타일을 많이 봤는지를 자랑하는 풍자 글이 연일 올라왔다. “오늘 난 가족보다 미우미우를 더 많이 봤어”, “미우미우를 볼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면(Taking a shot·‘술을 마신다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의적인 표현을 활용한 유머), 간부전에 걸릴 지도 몰라” 등이다. '미우미우 룩을 보는 나'라는 제목 아래 한껏 질린 표정을 한 남성의 사진은 미우미우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웃음코드다.

미우미우 패션은 이른바 ‘힙스터’(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들의 심리를 잘 파고 들었다는 평가다. 태생적으로 주류를 거부하고 비주류 문화를 쫓는 힙스터들은 ‘청개구리 심보’를 갖고 있다. 한 예로, 배우 조니 뎁의 딸 릴리 로즈 뎁이 에어팟 대신 유선 이어폰을 착용한 채 거리를 활보한 사진이 파파라치에 찍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대다수가 착용하는 옷과 신발은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우미우의 Y2K 패션이 그 지점을 잘 파고 들었다.


런웨이에 70대 중국인 모델 세웠더니

한 철 유행으로 끝날 줄 알았던 미우미우 트렌드는 패션계의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가는 분위기다. 에르메스 로로피아나와 같은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열풍 탓에 지난해부터 루이비통 디올 구찌 등 대부분 매스티지(대중 명품) 브랜드들의 매출이 부진하지만, 미우미우는 여전히 독보적으로 성장 중이다. 지난해 미우미우의 매출은 전년 대비 58% 늘어난 6억5000만유로(약 9000억원)를 기록했다. 작년 글로벌 명품시장 성장률(2.55%·스테이티스타 조사)을 크게 웃돈다. 올해도 수요가 줄지 않아 1분기만해도 매출이 89% 급증했다.
플러스사이즈 모델인 팔로마 엘세서가 미우미우 세트를 입은 모습을 담은 잡지 표지. 사진=SNS 캡처
업계에선 미우미우의 성공 요인을 시대적 흐름을 잘 읽은 SNS 마케팅 전략에서 찾는다. 이 브랜드가 처음 미우미우 세트를 선보였을 때 2000년대 팝스타가 입을 법한 자유롭고 대담한 디자인에 패피(패션 피플)들은 열광했지만, 일각에선 “비현실적으로 가는 팔과 다리, 며칠 굶은 듯 쏙 들어간 배로 상징되는 획일적인 몸매를 강요하는 의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영국 패션 잡지 ID 신간 표지에 플러스사이즈 모델인 팔로마 엘세서가 미우미우 세트를 입고 나오면서다. 짧은 티셔츠와 치마를 입고 군살 있는 풍만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엘세서의 당당한 모습에 호평이 쏟아졌다. 이태리의 유명 패션 매거진 NSS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이상을 확산했다는 비난을 잘 만회한 영리한 PR”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파리 가을·겨울(FW) 패션위크에서 모델로 70대 중국인 여성을 선정한 것도 비슷한 행보다. 미우미우는 상하이 출신의 은퇴한 의사 친 후이란(70)을 런웨이에 세웠다. “모든 연령대를 위한 옷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미우미우의 설명은 전세계 여성 온라인 유저들을 흥분케 했다. 인스타 디엠(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일반인 모델을 캐스팅했다는 비화까지 SNS를 통해 퍼지면서 미우미우는 또 한번 화제의 브랜드가 됐다.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최근 패션시장에 불고 있는 ‘보디포지티브’(자기 몸 긍정주의) 트렌드를 효과적으로 겨냥한 데다가 최대 마켓인 중국시장까지 공략했다”며 “중국인 여성이 명품 브랜드 런웨이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만해도 굉장한 뉴스인데 70대 노인이라는 점이 중국 내에서 확산중인 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파리 FW 패션위크에서 미우미우 모델로 선정된 70대 상하이 출신 인플루언서 친 후이란. 사진=WWD 캡처

앰배서더로 장원영 선정한 이유는

이제 글로벌 명품 브랜드 기업들이 K팝 아이돌 마케팅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샤넬(블랙핑크 제니), 디올(블랙핑크 지수, 뉴진스 해린), 루이비통(르세라핌), 생로랑·티파니앤코(블랙핑크 로제), 셀린느·불가리(블랙핑크 리사) 등 헷갈릴 정도로 많은 한국 아이돌 가수 앰배서더 속에서 미우미우는 지역 맞춤형 전략 아래 모델을 기용했다. 걸그룹 아이브 장원영, (여자)아이들 민니, 트와이스 모모가 미우미우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파리 가을·겨울(FW) 패션위크의 미우미우 가을 패션쇼에 참석한 민니, 원영, 모모. 사진=WWD 캡처
미우미우의 앰배서더 라인업에는 매출 50%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 지역을 타게팅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K팝 아이돌이긴 하지만 일본인 멤버인 모모가 일본 시장을, 태국인 민니는 동남아 시장을, 장원영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블랙핑크나 뉴진스 등보다 글로벌 인지도는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홍보 효과는 그들 못지 않다는 게 명품업계의 평가다. 아시아 시장에서 명품 입지가 커지면서 미우미우는 글로벌 인기 순위보다 현지 맞춤형 모델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미국 패션전문지 WWD에 따르면 중국 내 가장 인기 있는 SNS 중 하나인 샤오홍슈에서 미우미우 모델 장원영의 이름은 현재까지 30억 회 이상 언급됐다. 블랙핑크 멤버인 리사, 지수, 로제보다 많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