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vs랜드마크] 바라보는 경관이냐, 함께 만드는 풍경이냐
입력
수정
지면A21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총석정, 죽서루, 월송정, 낙산사…. 예로부터 관동 지역의 명승지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소의 매력에 빠져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면 꼭 정자나 누마루 같은 건물이 하나씩 서 있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웅장하지 않다. 그곳의 주인공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치를 잘 즐길 수 있도록 건물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생략의 미, 프레임으로서의 미를 발휘하고 있다.
2021년 완공된 미국 뉴욕 맨해튼의 리틀아일랜드는 허드슨강의 유일한 인공섬으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축구장 크기의 아무것도 없는, 오픈된 공간일 뿐이다. 꽃과 나무가 만발한 공원과 광장으로 비워진 곳이란 느낌을 받는다. 리틀아일랜드는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파손된 피어54를 복원하기 위해 처음 구상됐다.
시에서는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뒤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했고, 상하이엑스포의 영국관 설계로 유명한 토머스 헤더윅이라는 건축가를 선정해 디자인을 맡겼다. 그는 하나하나의 단위를 활용해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장점을 가진 건축가인 만큼 피어에 남겨진 부러진 나무 기둥에서 영감을 받아 허드슨강에 박힌 콘크리트 기둥을 활용한 인공화분 형식의 공공공원을 제안했다. 총 280개의 피어화분은 강바닥에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 인공 구조물로 서로 연결돼 넓은 인공 지반을 만들었다. 강으로 나아가며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사람들의 시야에 역동성을 준다. 섬의 끝부분에서는 허드슨강을 극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인공섬에 서면 뉴욕 맨해튼을 거꾸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인공섬은 그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 허드슨강과 뉴욕을 구경하는 최고의 장소가 되도록 자신을 비우고 있다.비워진 공간으로서의 리틀아일랜드와 비교해 10여 년 전 세워진 서울 한강에 있는 세빛섬(해안건축 작품)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강을 즐기고 한강에 볼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물 위에 뜨는 인공 구조물로서 제작됐다.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한강의 수위가 일정하지 않기에 로프를 이용해 물 위에 뜨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세빛섬은 기본적으로는 배 같은 건물인 셈이다.멀리서 봤을 때 꽃잎을 겹쳐놓은 것 같은 세빛섬의 건물 모양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바라다보는 즐거움을 준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야간조명은 밤의 검은 강물과 대비되며 시각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또한 세빛섬 안에는 연회장, 레스토랑, 카페 등 강물과 섬, 건물의 독특한 조합 위에서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구비돼 있다. 건물이 섬을 차지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강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떠 있는 건물 섬을 구경하거나, 아니면 섬 안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강의 공터에 하나의 볼거리가 들어섰고, 활동을 진작시킬 수 있는 여가 공간들이 형성된 것이다.
바라다보던 강, 쉽게 접근되지 않는 흐르는 강 위에 주인공처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물을 통해 사람들은 선상에서의 파티나 경회루에서의 연회를 즐기는 것처럼 일상적 이벤트를 즐기고 여흥을 돋울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경관의 주인공은 누구여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비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리틀아일랜드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비워진 장소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자연과 어우러진 동양적 문화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빛섬은 어떤 공간일까. 강이라는 공간을 차지하며 그 안에서 즐거운 행위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 자연이라는 대상과 그곳에 있는 건물,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활동을 하고 있을 ‘사람’이라는 주체가 3박자를 이루며 만들어가는, 한국 현대사회가 반영된 한 폭의 풍경화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