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 간판기업 20곳 현금 확보 총력전

'3고 현상'에 현금 안전판 마련

최근 3개월새 12조 늘어
1분기 총 차입금 181조원
SK가스 등 중견기업도 차입 확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기아 포스코홀딩스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한국의 간판기업 20곳이 최근 석 달 새 차입금으로 12조원가량을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 확보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현상’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이에 대비해 ‘현금 방어판’ 마련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0대 상장사 총차입금 181조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엔솔 기아 포스코홀딩스 삼성물산 LG전자 HD현대중공업 등 주요 상장 20곳의 올 1분기 말 총차입금은 181조2376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에 비해 12조1551억원 불었다. 올해 1분기 재무제표를 공개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기업을 추린 결과다. 차입금이 불어나면서 현금성자산도 증가했다. 20개 상장사의 현금성자산 합계는 200조8342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7조1092억원 증가했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의 올 1분기 말 차입금은 15조5042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2조8182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 회사의 현금성자산은 97조3928억원으로 4조9856억원 불었다. 삼성전자는 차입금 조달은 물론 자회사 배당금으로 곳간을 채웠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5조6395억원의 배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포스코홀딩스와 SK이노베이션의 차입금은 각각 27조7450억원, 31조9244억원으로 각각 1조7750억원, 2조9656억원 불었다. 한화솔루션은 11조7989억원으로 2조4490억원 불었다. GS건설 차입금은 5조5840억원으로 3360억원 늘다. SK하이닉스의 차입금은 29조5060억원으로 370억원 증가했다.

반면 올해 1분기 ‘깜짝 실적’을 거둔 기아의 차입금은 3조5220억원으로 2780억원 감소했다. 기아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9.2% 증가한 3조4257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의 영업이익 컨센서스(2조8000억원)를 크게 웃도는 ‘깜작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도 차입금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SK가스는 지난 3월 5000억원 규모의 단기 기업어음 발행 한도를 설정했다. 올 1분기에 남해화학(1822억원), 이노션(1000억원) 등도 단기차입금 한도를 늘렸다.

1분기 국내기업 36.2조 조달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올해 1분기에 대출과 주식, 회사채로 조달한 자금은 36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1분기 조달액(35조4000억원)에 비해 1조8000억원가량 불어난 규모다.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속도를 내는 것은 경영 여건을 둘러싼 실물경제 변수가 시시각각 바뀌는 것과 맞물린다. 이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최근 환율을 비롯한 실적을 둘러싼 변수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80원대에서 움직이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환율이 오름세를 타면서 외화차입금 이자비용과 원재료값이 뜀박질할 수 있다. 그만큼 실적을 갉아 먹는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번지면서 자금시장이 움츠러들 것이라는 관측도 자금조달을 부추기는 배경이 됐다. 삼성KPMG에 따르면 지난해 말 부동산 PF 익스포져(위험노출액)가 20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PF 부실이 불거질 수 있고 그만큼 신용위험도 부각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회사채 시장이 움츠러들 우려도 크다. 기업들도 이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