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살인 홍수'까지 덮쳤다…"금사과는 시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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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과, 금옥수수…전 세계가 '역대급 폭우'에 몸살어린이날 연휴인 5~6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전남 지역에선 지난 5일 하루 광양(198.6㎜)과 진도(112.8㎜)에서 5월 하루 강수량 기록을 새로 썼다. 같은 날 완도(139.9㎜), 순천(154.1㎜), 보성(186.7㎜), 강진(129.2㎜)에서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5월 하루 강수량을 보였다. 제주, 경남 지역에서도 이례적 폭우로 항공편이 결항하고,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올해 한반도는 연초부터 평년보다 유독 많은 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지난 4일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281.7㎜로, 평년 평균의 124.3%에 달한다. 문제는 예년에 비해 훨씬 습해진 날씨 탓에 각종 신선식품 가격이 좀처럼 하락 안정 추세로 돌아서지 못 하는 등 경제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겨울철 습했던 날씨와 일조량 부족이 과일·채소 작황에 한꺼번에 악영향을 미쳐 돌아가면서 급등 추세를 보이고 있다.
폭우로 몸살 앓는 세계
이런 현상은 한반도에 국한한 것도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최근 전 세계적 폭우로 인해 아프리카 케냐와 남미 브라질의 댐이 붕괴되고, 남중국에서는 고속도로가 산사태에 매몰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두바이에서는 사막의 공항 이착륙장이 홍수로 물에 잠겼고, 호주에서는 광산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최근 수주 새 전 세계적으로 이어진 폭우와 ‘살인 홍수’는 지역·강도 측면에서 모두 예기치 못 한 수준이란 게 WSJ의 설명이다.전 세계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우가 이어지는 건 기록적 이상고온 현상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구가 더워지면 더워질 수록 습도도 높아진다. 공기가 따듯해질 수록 머금을 수 있는 물의 양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두바이의 경우 동태평양 해수 온도가 따듯해지면서 발생했고, 케냐 등 동아프리카 홍수는 인도양의 엘니뇨라고 불리는 '인도양 쌍극자'라는 기상패턴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양 쌍극자는 인도양 서쪽(동아프리카)과 동쪽(호주 인도네시아)의 바다 온도가 번갈아가며 올라가는 현상이다. 전 세계 기온은 최근 10개월 간 연속으로 과거 평균 기온을 웃돌았고, 바다 수온은 12개월 연속 상회했다.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타격
이례적 홍수는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신선 및 가공식품 가격 불안을 야기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정책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고 있다.지난 3일 미국 옥수수 선물 가격은 1월 말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콩도 한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핵심 요인으로는 홍수로 최대 수출국인 브라질의 수확이 중단되고 아르헨티나의 옥수수 작물에 질병이 발생한 게 지목된다.한국도 마찬가지다. 사과, 딸기 등 주요 과일과 채소가 올해 내내 번갈아가면서 가격이 치솟은 데엔 지난 겨울 평소보다 많았던 강수량과 적었던 일조량으로 인해 작황이 좋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부터 1년 이상 안정적 가격흐름이 이어졌던 마늘마저도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벌마늘(2차 생장) 피해가 확산해 반등 가능성이 커졌다.
벌마늘은 마늘 한쪽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마늘 쪽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마늘 알이 최다 20개 이상으로 늘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벌마늘은 겨울 온도 상승, 잦은 강우로 인한 토양 과습 등으로 발생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상기후는 앞으로도 장기간 식품생산에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인프라 확충 등 체계적인 대응에 나서야하는데 제대로 된 대비책이 마련돼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