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포퓰리즘이 낳은 대마초 합법화

박신영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인근에는 한 건물의 1층 전체를 쓰는 약품 판매점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 판매점 가운데 일부에선 대마초 잎사귀 모양의 전광판을 내건 곳도 있다. 대마초를 판매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업소의 대부분은 대마초를 불법으로 판매하고 있다. 타임스퀘어 인근 상인들의 비영리 연합체인 ‘타임스퀘어 얼라이언스’의 톰 해리스 회장은 “이들 불법 판매점에서 파는 대마초에선 곰팡이와 살충제 성분이 발견됐다”며 “일부 학생은 아침 등굣길에 대마초를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법 대마초 가게 판치는 뉴욕

뉴욕주는 2021년 3월 기호용 대마초 판매를 합법화했다. 뉴욕주에서는 21세 이상의 성인이 개인 용도로 최대 3온스의 대마초와 24g의 대마 농축 제품을 소지할 수 있으며 흡연이 허용되는 곳이라면 대마초도 피울 수 있다. 뉴욕주는 기호용 대마초 합법화로 세수 증대를 비롯해 대마초 단속에서 불이익을 받는 흑인과 히스패닉 등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 해결을 기대했다.정책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뉴욕주는 순차적으로 대마초 판매점을 허가해 현재까지 뉴욕주 전체 130여 개 매장에서 대마초를 팔 수 있다.

이 가운데 44곳이 뉴욕시 안에 있다. 하지만 뉴욕경찰청에 따르면 뉴욕시 안에만 2000개에 달하는 가게에서 대마초를 불법으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대마초 판매점은 작은 공간만 있어도 시작할 수 있어 사업을 개시하는 데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최근 맨해튼 시내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까지 올라가면서 수익 압박을 느낀 건물주들이 불법 대마초 가게에 눈감고 공간을 내주는 사례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뉴욕경찰청은 최근 불법 대마초 가게 건물주에게 1만달러의 벌금을 물리기 시작했다.

선거 앞두고 나온 인기 영합책

미국 연방정부는 최근 대마초를 헤로인, 엑스터시, 리서직산디에틸아마이드(LSD)와 같은 1군 약물에서 제외했다. 그 대신 타이레놀 등 해열제와 같은 3군 약물로 낮추는 재분류 안을 권고했다. 해당 권고안이 최종 확정되면 불법으로 대마초를 소지한 사람에 대한 형사처벌이 완화된다.

일각에선 미국의 대마초 정책이 포퓰리즘의 영향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뉴욕주가 애초에 기호용 대마초를 합법화한 것은 당시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성 추문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연방정부의 대마초 정책 또한 11월 대선을 의식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선거 전략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수많은 청년이 대마 소지로 과도한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대마초 합법화는 단속에 상대적으로 많이 걸리고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 인구의 표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 흑인과 백인의 대마초 사용 비율은 비슷하지만 흑인의 체포 건수가 훨씬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대마초의 신체적·정신적 의존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도 상당수 대마초 합법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정책이 부작용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표심에 밀려 실현되는 순간 이미 수습하긴 늦은 상태다. 포퓰리즘 정책이 위험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