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텍사스'와 안개 그리고 미망… 전주영화제서 주목할만한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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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 3편올해 25회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가 10일 폐막을 하루 앞두고 있다. 전주는 아직도 상영관을 찾는 관객들과 게스트들로 붐비는 중이다. 열흘 간 극장을 채웠던 관객들과 올해 영화제를 직접 즐기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2024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작품 3개를 선정했다.
빔 벤더스 감독
김수용 감독
김태양 감독
▶▶▶[관련 기사]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메이저 톤으로’… ‘힘을 낼 시간’은 3관왕
1. <파리, 텍사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허진호] 섹션
올해 게스트 프로그래머로 참여하는 허진호 감독이 선정한 5개의 작품 중 한편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친구와 함께 포스터만 보고 야한 영화라고 생각해서 보게 되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장난기 어린 고백(?)은 사실 이 영화의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화의 메인 캐릭터, 제인 (나스타샤 킨스키)의 압도적으로 관능적인 이미지들 때문이다. 빔 벤더스의 작품 <파리, 텍사스>는 일종의 로드 무비다. 영화는 갑자기 말을 잃게 된 형을 만나러 가는 동생 (헤리 딘 스탠튼)을 시작으로 형의 옛 연인을 함께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따르며 형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을 그린다. 형제와 마침내 조우하는 여자, 제인 (나스타샤 킨스키)은 텍사스의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전체의 건조한 이미지를 잠식할 정도로 매혹적이고 신비롭다.이 작품으로 빔 벰더스는 칸 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뿐만 아니라 국제영화비평가상까지 휩쓸며 벰더스의 최고작으로 기록되었다. 올해 영화는 40주년 개봉 기념을 맞아 칸 영화제의 ‘칸 클래식’ 섹션에 선정되기도 했다. 해리 딘 스탠튼의 애절한 눈망울과 나스타샤 킨스키의 몽환적이고도 치명적인 자태는 영화 전체의 페르소나로 각인될 만큼 강렬하다. 두 배우의 커리어에 있어서 이 영화를 통해 최고 연기를 보여주었음은 물론이다. 과연 감독 허진호의 선정작으로, 올해 영화제의 메인 스펙터클로 부족함이 없다.
2. <안개> [다시 보다: 25+50] 섹션
개최 25주년을 맞는 전주국제영화제와 50주년을 맞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콜라보 섹션의 한편으로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영화화 한 김수용 감독의 작품이다. 원작자인 김승옥이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했다.영화는 제약회사 사장의 딸인 과부와 결혼해 상무로 일하고 있는 윤기준 (신성일)의 휴가로 시작된다. 바다도, 농촌도 아닌 특산물이라곤 안개뿐인 도시, 무진에 도착한 윤기준은 병역 기피자였고 폐병 환자였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박 선생 (김정철)이 집에 찾아와, 둘은 윤기준과 더불어 무진 출신으로 가장 성공했다는 세무서장 조한수 (이낙훈)를 만나러 간다. 조한수의 집에는 세무서 직원들과 서울에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내려온 하인숙 (윤정희)이 화투를 치고 있다. 윤기준은 하인숙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서울에 데려가 달라고 한다. 한국형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안개>는 단조로운 이야기만큼이나 단조로운 이미지들이 인상적인 영화다. 안개가 자욱한 무진에서 조우하게 되는 두 남녀는 도시만큼이나 혼탁하고 흐릿한 자신들의 미래에 지친 인물들이다. 김수용의 다른 작품들 (예. <화려한 외출>)이 그러하듯 영화 속 공간은 캐릭터들의 일상과 운명을 좌우하는 요소이자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황량한 무진의 자연과 공기에, 그리고 그들의 희뿌연 운명에 휘청거리는 인물들을 반드시 스크린으로 목도해야 하는 이유다.
3. <미망> [한국경쟁] 섹션
전주국제영화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한국경쟁 섹션에 초청된 작품 중 단연코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려한 작품이다. 김태양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미망>은 세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의 말미에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의 꼭짓점으로 중첩된다. 영화는 1. 종로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두 남녀 2. 서울극장에서 인연을 맺게 되는 두 남녀 3.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재회하게 된 세 남녀의 이야기로 구성이 된다 (세 개의 이야기를 모두 같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 개의 이야기의 부제 역시 모두 ‘미망’이지만 이는 모두 다른 한자로 다른 명제를 갖는다. 영화가 다루는 서울이라는 공간, 특히 ‘광화문’은 상징적이다. 이들은 모두 광화문을 중심으로, 혹은 광화문을 향해 떠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추인 광화문은 인물들의 관계를 배태하는 곳이기도, 해체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치 누벨바그 영화들 속 파리가 그러했듯, <미망>이 그리는 서울, 광화문은 한 시대의 구성원들을 수혈하는 동력이자 영화적 리비도(libido)의 원천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다음 선택은 홍상수 감독을 이어 신예, 김태양 감독이 되어야 마땅하다.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올해 객원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허진호 영화감독의 단독 인터뷰는 5월 27일 발간되는 아르떼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