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칩·5G안테나까지…진격의 '소부장 스타트업' [긱스]

수입에 의존하던 제품
앞다퉈 국산화 성공

'반도체팹' 칩스케이
질화갈륨 전력반도체
하반기 국내 첫 양산

더굿시스템, 세계 최초
다이아 복합 소재 개발
반도체 200도 열 견뎌

VC, 소부장 투자 활발
해외 기술 바탕 국산화
사업화·상장도 쉬워
기업가치 평가도 후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스타트업이 소부장 제품 국산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벤처캐피털(VC)의 지원 아래 수입에 의존해오던 반도체와 통신 장비 등을 개발 중이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전문가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칩스케이, 전력반도체 국산화 성공

반도체 스타트업 칩스케이는 7일 650볼트(V)급 고전압 질화갈륨(GaN) 전력반도체 개발을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칩스케이는 반도체 설계를 전담하는 팹리스다. 곽철호 칩스케이 대표는 “GaN 전력반도체는 지금까지 전량 수입했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면 차세대 전력반도체를 국산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력반도체는 휴대폰 충전기부터 전기차,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등에 사용되는 차세대 반도체다. 전력을 변환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GaN 전력반도체는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반면 기존에 사용하던 실리콘 반도체는 150도 이상에서 반도체 성질을 잃어 발열이 높은 고성능의 전자기기에 활용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미래 신산업 일환으로 2027년까지 GaN 반도체를 개발할 계획이다.

고효율 방열기판 제조업체 더굿시스템은 세계 최초로 1000W/mK급 열전도의 다이아몬드 금속복합 소재를 개발했다. 방열기판은 열이 200도까지 오르는 반도체를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 성능 개선과 수명 연장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꼽힌다. 6세대(6G) 무선통신과 전기차,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에 사용된다. 이 회사는 지난달 16일 미래에셋벤처투자와 BSK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70억원의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2차전지 장비·바이오 소재도 개발

삼성전자와 IBM 등에서 통신 분야를 담당한 박준호 대표가 2016년 창업한 스타트업 크리모는 스마트폰 부품인 안테나 전문업체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 앞면에 장착할 수 있는 투명 안테나를 개발했다. 디스플레이의 미세 전극을 활용한 기술로 휴대폰 통신 성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박 대표는 “북미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와 상용화를 위한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사내 기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 이노레이는 2차전지 검사 장비를 개발한다. 2차전지에 레이저를 쏜 뒤 발생하는 초음파를 분석해 2차전지 전극의 접점 용접이 안전하게 이뤄졌는지를 분석한다. 현재 삼성SDI에 검사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유재명 이노레이 대표는 “전기차 충전 전압이 높아지면서 화재 위험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며 “용접이 잘돼 있을수록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스타트업 아미코젠은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필수 소재인 배지와 레진을 국산화하는 데 나섰다. 배지는 세포를 배양하기 위해 필요한 먹이로 90% 이상 수입하고 있다. 아미코젠은 최근 인천 송도에 배지 공장 준공을 승인받았다. 연간 105t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단백질과 항체를 정제하는 데 쓰이는 물질인 레진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아미코젠은 이달 전남 여수 레진 공장을 완공할 계획으로 연간 1만L를 생산할 예정이다.

기술성 입증해 상장 성공

소부장 스타트업은 비슷한 업종의 중소기업과 성장 공식이 다르다. 이들은 혁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업 초기 액셀러레이터(AC)와 VC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끌어와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개발해 상용화한다. 시리즈A 단계인 초기 2~3년은 VC에서 수십억원대 투자를 받아 제품을 개발하고 테스트해 성능을 검증하는 단계다. 이후 제품 양산을 위한 대규모 자금을 받아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선다. 최근 키움인베스트먼트는 소부장 기업에 집중 지원하는 펀드를 결성해 115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조성한 글로벌공급망 대응 펀드로 국내 중소기업의 공급망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목적이다.

최근 소부장 스타트업에 투자한 투자사들은 원금 대비 수배에 달하는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다른 분야 스타트업에 비해 상장이 용이해서다. 소부장 스타트업은 기존 해외 기술을 바탕으로 국산화와 기술 개발에 나서 사업성 입증이 비교적 쉽다. 기업 가치 평가도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올해도 국내 VC의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소부장 업체의 상장이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셋벤처투자가 투자한 사피엔반도체는 지난 2월 상장에 성공했다. 마이크로LED 디스플레이 구동에 필요한 반도체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주사전자현미경(SEM) 개발업체인 코셈도 상장을 완료했다. 반도체업체 세미파이브와 웨이비스는 올해 안에 상장할 예정이다. 채정훈 미래에셋벤처투자 부사장은 “국가 첨단산업과 연관된 소부장 업체의 경우 상장이 긍정적으로 검토되는 분위기”라고 했다.스타트업들이 소부장 국산화에 나서면서 대외 의존도는 낮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부장 수입액은 지난해 2434억달러로 2022년(2639억달러) 대비 7.7% 감소했다. 일본 수입 의존도는 지난해 14%로 2019년(17%)과 비교해 3%포인트 낮아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일본 수출규제 품목이던 포토레지스트 수입량은 지난해 669t으로 2022년(896t) 대비 25.3% 줄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입량도 17t 줄었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