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닷컴 '풋옵션 논란' 이겨낼까 [박종관의 딜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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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관 증권부 기자▶마켓인사이트 5월 7일 오후 5시 42분
2018년 10월 31일. 신세계그룹이 SSG닷컴에 1조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계약을 맺던 날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철주 어피너티 부회장, 윤관 BRV캐피탈 대표와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었다.
SSG닷컴 임직원도 한껏 들떠 있었다. “‘한국판 아마존’을 만들겠다”며 큰소리도 쳤다. 아무것도 없던 신설 법인에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1조원의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신세계그룹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논란이 된 풋옵션을 당시 투자자들에게 준 이유도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신세계그룹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BRV캐피탈에 1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5년 내 거래액(GMV)이 5조1600억원을 넘지 못하거나 복수의 증권사로부터 기업공개(IPO)가 가능하다는 의견서를 받지 못하면 투자금을 고스란히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풋옵션이 달린 투자 유치는 사실상 대출에 가깝다. 그땐 아무도 5년 뒤 돌려줘야 할 투자금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상품권 매출 부풀리기 논란
상황은 예상과 정반대로 흘렀다. e커머스 시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 창구 역할을 한 SSG닷컴도 나름의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경쟁자들은 더 빠르게 치고 나갔다. 공격적인 투자로 물류 경쟁력을 끌어올린 쿠팡은 지난해 이마트 매출을 넘어섰다. 플랫폼을 장악한 뒤 쇼핑으로 영역을 넓힌 네이버 커머스 부문은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다. 최근에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중국계 e커머스)의 공세까지 더해졌다.그사이에 끼인 SSG닷컴의 존재감은 날로 희미해졌다. 5년 전 당연하게 여기던 상장이 이젠 먼 나라 얘기가 됐다. SSG닷컴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궁지에 몰린 SSG닷컴은 상품권 할인 판매를 통한 거래액 부풀리기 묘안까지 동원했다. 자체 발행한 상품권을 싸게 팔고, 이 상품권으로 또 다른 매출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상품권 매출과 제품 판매 매출이 동시에 거래액으로 책정돼 거래액이 두 배로 잡히는 효과도 있다.
'1조원 풋옵션' 시작일뿐
투자자들은 곧장 문제를 제기했다. 신세계그룹과 투자자들이 맺은 주주 간 계약엔 SSG닷컴이 직매입하는 제품의 매출과 SSG닷컴에 입점한 업체가 판매한 제품의 매출 등 실질 거래만 거래액으로 계산한다는 조건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실질 거래가 아닌 상품권은 거래액에 포함되지 않는다.SSG닷컴 풋옵션 외에도 신세계그룹이 당면한 문제는 켜켜이 쌓여 있다. 2021년 3조4000억원을 투입해 인수한 G마켓(전 이베이코리아)은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전략을 강화하긴커녕 그룹 재무구조를 병약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 돼버렸다.
당시 신세계그룹과 G마켓 인수 경쟁을 벌였던 롯데그룹은 인수 경쟁에선 졌지만 신세계그룹의 G마켓 인수 가격을 듣고선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분명 얼마 가지 않아 탈이 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인수 이후 G마켓은 신세계그룹 다른 계열사와 별다른 시너지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사업구조를 온라인과 디지털로 180도 전환하겠다”는 계획은 그럴듯했지만 결과는 이마트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내는 냉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이지 머니’ 시절 신세계그룹은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이었다. G마켓과 스타벅스, 더블유컨셉, SSG랜더스, 셰이퍼빈야드 등을 연이어 사들였다. ‘이지 머니’의 시대는 끝났다. 청구서는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번 풋옵션 사태는 그 시작을 알리는 경고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