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농부 바키는 왜, 비가 그치자마자 내빼버렸나 [서평]

소설
고대 이집트 생활사
평범한 백성의 일상을 상상
기원전 14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400여년전. 영원한 권력을 누릴 것 같던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투트모세 4세가 석연치 않게 왕위에 오른 뒤,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제국의 열두 달>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기원전 1550~1069년) 시절을 배경으로 쓰여진 팩션(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소설)이다.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저명한 고고학자인 저자 도널드 P. 라이언은 파라오를 비롯한 권력자 대신 평범한 이집트 백성들의 삶에 주목했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인의 생활 모습을 1년이란 시간에 걸쳐 풀어냈다. 고대 이집트인의 달력은 오늘날 달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일강 범람을 기준으로 세 시기가 4개월씩 이어졌다. 7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나일강의 범람 시기와 11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 파종과 재배의 시기, 그리고 3월 중순에서 이듬해 7월 중순까지 연결되는 수확의 시기다. 책의 이야기도 이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당시 이름없는 민초들은 글을 쓰거나 읽지 못했기 때문에 상류층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그들의 생활상은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웠다. 파라오와 총리 대신 아메네모페트 등 역사적 실존 인물과 더불어 농부 바키, 어부 네페르, 옹기장이 로이 등 가상 인물을 접목해 고대 이집트의 생생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가상의 인물을 차용했지만 발굴과 연구를 기반으로 그려낸 평범한 백성들의 생활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테베 근처 마을에 사는 농부 바키는 밭이 나일강에 잠긴 동안 노역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부 네페르는 하피 신에게 만선을 기원하며 매일 나일강에 그물을 던진다. 궁전의 의사 네페르호테프는 병석에 누운 파라오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미라 제작 장인 마후는 완벽한 미라 제작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밖에 군인, 방직공, 서기관, 사제 등 다양한 고대 이집트인의 흥미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수 천년 전 이집트인의 생활사를 다룬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매일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모이면 개인의 역사, 나아가 그 시대의 역사가 된다. 역사의 큰 줄기 아래 미미해 보이는 오늘의 일상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란 사실에 위로를 받게 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