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가 작가라면 나는 루마니아의 마리아 공주”
입력
수정
[arte] 심상용의 이토록 까칠한 미술
대중의 취향이라는 지라시
1천억원짜리 취향, 제프 쿤스
포장술
미국 팝아트와 키치(Kitsch) 미술의 철학적, 도덕적 기반은 대중(public)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미국의 대표적인 키치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사인이 새겨진 반짝거리는 것들도 다르지 않다. 대중의 ‘행복한 반응’이 그 반짝거리는 것들의 토대라고 쿤스 자신이 밝힌다. 관람자의 ‘내면의 안정’, 즉 그들이 그들 자신에 대한 신뢰를 깨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즉 ‘언제나 그들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 자신의 예술론이라는 것이다.정말 그런가? 그들이 늘 옳은가? 그저 군중의 비위나 맞추고 보자는 것은 아닐까? 일반적인 인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일상의 가벼운 결정을 내릴 때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다. 듣기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런 말 잔치로는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어떤 정신적인 것도 줄 수 없다. 내면의 공복을 채울 수도, 영혼에 드리워진 상실을 위로할 수도 없다. 그런 달큰한 것으로는 선(善)에 이를 수 없다고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는 말한다.[1]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모방이론’이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에 의하면 인간은 미메시스적 존재, 즉 필연적으로 모방하는 존재다. 인간은 욕망에 의해 경쟁적으로 타인을 모방한다. 하지만 모방의 대상에는 독(毒)이 묻어있기에, 모방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경험한다. 자라르는 인류의 문화를 “미메시스의 독(毒)에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반미메시스적 차이의 체계”로 정의하면서, 그 체계의 성공 여부는 모방 욕망을 스스로 인식하고 통제하는 ‘진정한 개인’에 달려 있다고 한다. 진정한 개인은 누구인가? “독립적으로 욕망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자신의 욕망과 열정에서 비진정성과 모방성을 인식하려 애쓰는 사람”이다.[2]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미메시스적 존재를 넘어 진정한 개인으로 나아가는가? ‘군중과 다른 길’을 택하도록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블래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의 제1부에 밝힌 바, 인간은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 참으로 이해하는 것에 의해서만 위대함의 계기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다.[3] 자신의 비참함, 인생을 “종국에 절망으로 끝나는 길고도 헛된 긴장”, 진부한 패턴의 권태로운 되풀이로 내모는 밑으로 끌어내리는 힘을 직시하는 것에 의해, 위대성으로 난 길로 한 걸음 내딛는 존재인 것이다.욕망과 그 최대한의 충족을 표방하는 이 시대의 문화는 위대성의 조건과 정반대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인간을 둘러싼 비참성의 조건들은 적극 부정하거나 은폐함으로써, 미메시스적 욕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예술의 이름을 차용한, 탐욕을 미화하고 권장하는 계략들로,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분별하려고 들지도 않으면서 어두운 모방의 동굴 안으로 무기력하게 휩쓸린다. 자크 엘륄(Jacques Ellul)은 말한다.“군중은 그 안에 어떤 이성도, 어떤 진실도, 어떤 담론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기운을 잃고 낙심하게 된다.… 이 군중은 파시스트 수장이나 나치 총통이나 인민의 아버지나 가리지 않고 그게 누구든지 먼저 오는 목자에게 예속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4]
방향을 틀어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사회적 메커니즘에 대한 명상’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정화(淨化)가 필요하다. 정화된 개인만이 지라르가 말한 진정한 개인, 모방 욕망에 저항하는 개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두 종류의 문화와 예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방 욕망의 동굴로 처박는 것과 반대로 정화의 과정으로 이끄는 것.
배후의 진실
2019년 쿤스의 대표작 <토끼>(Rabbit)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107만 달러(약 1181억원)에 팔렸다. 이로써 그는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예술가가 되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표면을 연마한 알루미늄 재질의 토끼에 지나지 않는 것에 ‘억지춘향격으로’ 지적 난해성을 주입하는 난해한 해석들이 줄을 이었다. 일례로 ‘통속적 독자성’이나 ‘현대사회의 냉혹한 현실의 재현’ 같은 것으로, 보는 이의 심적 안정이나 행복 운운했던 작가의 주장과는 격세지감의 것들이다.한때 그의 아내였던 일로나와의 노골적인 정사를 클로즈업한 사진 연작 < Made in Heaven >은 ‘관습에 불응하는 영웅적인 전위’로 추켜세워졌다. 이로부터 ‘키치-전위주의’라는 생뚱맞은 용어가 현대미술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한편으론 기존의 전위미술을 ‘감상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난해한 엘리트 놀음’으로 비하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밥상에 넌지시 숟갈을 얹는 스타일쯤 되겠다.▶▶▶ [관련 인터뷰] 4만불짜리 풍선 개 깨지자...'최고 몸값' 제프 쿤스의 한마디 "내 뜻대로 됐다"영국 작가 케이트 타이슨(Keith Tyson)이 정곡을 찌른다. “미묘하거나 뉘앙스가 풍부한 작품으로 아트페어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5]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는 작품의 내용에 관한 것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태도는 명백하고, 결과는 화사하거나 반짝거리는 것이 좋다. 역사성이나 사회성을 띨 때, 전통적 조형의 묘미 예컨대 회화성 같은 것을 추구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이를테면 적정량의 아방가르드적 향취를 풍기는 것으로 족할 것, 새로워 보이는 인상으로 충분하며 그 이상은 과유불급으로 탈이 날 수 있음을 명심할 것, 비판적인 태도는 금물이며 부득이 현실을 다루어야 할 때는 마사지하듯, 술에 물 탄 듯 완곡하게 해야 한다 등이다. 그저 ‘흐름을 타고 경향을 따르면서’ 사태를 조망하는 태도, 숙연함보다는 적절하게 오락적이거나 외설적인 것들이 승산이 더 크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상에 관한 것이다. 현대미술의 주류 노선이 군중의 환심을 사는 것이 되었고, 쿤스는 이와 같은 시대의 예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 보상이 짐짓 눈부시다. 쿤스는 맨해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자리 잡은 13개의 방이 있는 고급 주택에서 할리우드 배우처럼 살고, 자신의 얼굴 사진이 ‘뉴욕 매거진’의 표지에, 그것도 ‘앤디 워홀 이후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라는 문구와 함께 실릴 정도의 성공을 손에 거머쥐었다. 이 정도면 뭇 작가들의 모방 욕망에 불을 붙일 만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사람들의 마음에 ‘혼선을 초래하지 않는’ 예술, 대중의 내적 안정감을 최고의 기치로 삼는 예술, 대중의 취향을 향해 전진 앞으로!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표면효과, 광고 스티커, 파티가 끝난 후에 입장하는 박수부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쿤스의 성공을 실제로 지지하고 있는 것은 대중이 아니다. 쿤스의 성공을 실제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쿤스의 성공을 실제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대중”이라는 슬로건을 기획하고 사실로 믿게 만드는 힘을 지닌 주체들이다.
맨해튼의 고급 주택과 명성의 진정한 배후는 (대중이 아니라) 뉴욕의 래리 가고시안, 런던의 도페이, 베를린의 막스 헤츨러 같은 전 세계의 거물급 딜러들이다. 미술품 경매 회사 크리스티와 명품 브랜드 구찌를 보유한 PPR 그룹의 창업자 프랑수아 피노(F. Pinault), 미국의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 업자 일라이 브로드(I. Broad), 그리스 부동산 거물인 다키스 조아노(D. Joannou) 같은 슈퍼 리치 컬렉터들이다. 미술 시장 전문가 올라프 벨투이스(Olav Velthuis)에 의하면, 쿤스의 성공의 뒷배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스는 “최근 어마어마한 여유자금을 보유한 부자들, 새로운 투자자산으로 미술작품을 주목하고, 기꺼이 투자하는 신흥 투자자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1000억원이나 하는 고가의 것이 대중의 취향으로 표명되고 설득되지만, 지라르가 말하는 진정한 개인을 회복해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취향은 무의미하고 무용하다.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의 재판
2000년 전에 한 재판이 열렸다. 몰려든 군중으로 재판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재판의 한 중심에 자신의 판결을 정치적으로 타협한 오명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재판관 폰티우스 필라투스, 대중적으로는 빌라도로 알려진 인물이 있다. 빌라도는 로마제국의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된 군인으로, 그가 총독으로 부임한 이후 두 번의 유대인 민중봉기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부임지의 정세가 상당히 불안정했던 것으로 보인다.[6]그날의 재판은 법정에 설 만한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종교지도자들의 악의에 의해 억울하게 고발당한 예수라는 청년의 죄를 심문하고 판결하는 것이었다. 빌라도는 피고인의 무죄를 이미 알고 있었다.[7]
하지만 사실대로 판결했다가는 자칫 격앙된 군중을 자극해 제3의 민중봉기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로마의 신임을 잃고 정치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빌라도는 임기변으로 다른 흉악범 한 명을 내세워 그와 예수 가운데 한 명을 방면시킬 권한을 군중에게 위임하는 타협안을 내었지만, 이미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은 군중이 그 안을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다. “그러면 ... 내가 어떻게 하기를 너희가 원하느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빌라도는 유무죄 여부를 넘어 형량까지 군중에게 떠넘겼고, 그 결과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결정되었다.[8] 빌라도는 군중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는 것 외에, 진실과 정의에 대해서는 일고의 관심도 없는, 악(惡)의 대변자일 뿐이었다.
군중의 환심을 사는 것이 예술의 궁극의 기치가 되었다는 것은 예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 외에 별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익명의 군중이 고도의 정신적 행위의 최종적인 근거가 되는 것, 그 피해자는 무엇보다 군중 자신이다. 자신의 인식과 판단이 얼마나 심각하게 교란되고 혼돈에 떨어지고 마는가를 돌아볼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빌라도의 재판에서 궁극의 피해자는 먼저는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다음으로는 정치가의 책략에 의해 기만당해 결과적으로 악의 세력에 가담자가 되고 만 군중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무고한 사람의 사형집행을 빌라도의 제도적인 판결에 사주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계략이 더더욱 악마적이다.비평가 존 캘드웰(John Caldwell)은 쿤스의 작업이 “겉보기와는 달리 서양미술사의 뼈대 있는 전통을 계승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냉혹한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9] 하지만 잡지 ‘뉴욕’의 수석 미술평론가이자 2018년 비평 부문 퓰리처상 수상자인 제리 살츠(Jerry Saltz)는 “제프 쿤스가 작가라면 난 루마니아의 마리아 공주”라고 비아냥거린다.
쿤스의 작품들이 미국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다룬다는 해석은 어떤가? 적어도 역사학자 모리스 버먼(Morris Berman)이 자신의 책 <암흑기의 미국(Dark Ages America)>에서 쓴 미국의 현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설득력이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다. 버먼은 오늘날의 미국을 로마제국의 말기에 비유한다. 교육 시스템의 붕괴, 대외 채무, 제3세계를 상회하는 영아사망률, 의료보험 체계 파산, 정신적 피폐와 약물 중독, 국민 감시, 법과 자유의 훼손 등을 이유로 꼽았다.
대전 직후까지만 해도 예술은 깨어있는 인식의 산물이라는 면모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듯 보였지만, 1990년대에 그런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부재에 주목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미국 미술 잡지 ‘아트뉴스’(ARTnews)는 자신이 선정한 ‘105년 후에도 남을 작가 명단’에 쿤스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서울대 조소과 교수▶▶ [관련 칼럼] 1000억 작가 제프 쿤스, 마침내 달에서도 전시를 하다
[1] 에릭 스프링티드, 『시몬느 베이유』, p.147.
[2] 정일권,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르레 지라르와 현대사상』, (서울: 새물결 플러스, 2014), p.96.
[3] 앞의 책, p.198.
[4] 자크 엘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은경 옮김 (대전: 대장간, 2010), p.58.
[5] Ben Luke, “The artist’s survival guide to art fairs”, The Art Newspaper, Art Basel Daily Edition, 12 June 2012, p.7. http://www.theartnewspaper.com
[6] 첫 번째 첫 봉기는 로마군을 투입하여 예루살렘 성을 세속화시키려고 시도했던 데 반해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빌라도는 5일 만에 군대를 철수시켜야 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궁전에 세운 「로마」기념비를 제거시키기 위해 일으켰다.
[7] 새번역성경, 마가복음15장 6~10절.
[8] “이에 빌라도가 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한 뒤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겨 주니라.”
[9] John Caldwell, Jeff Koons, San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1992,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