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컴백홈? “영파씨는 양파 씨가 아닌데 왜 매운맛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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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희윤의 괴곡산장괴곡산장 - 사립문(Intro)
[지난 편에 이어서]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산장지기는 저 검은 허깨비가 속삭이는 수수께끼에 일순 귀를 의심했다.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여기까지 듣자 관종과 산장지기 모두 혼비백산했다. 그 순간, 다섯 아낙네의 힙한 그림자가 수풀 뒤에서 잠시 어른거리는 듯하더니 그대로 사라지더라. 이는 필시 죠선국에 상서로운 징조이거나 그 정반대이렷다.
괴곡산장 2편 - “영파씨는 양파 씨가 아닌데 왜 매운맛이옵니까”
“짐이 요즘 기가 허해진 모양이다. 얼마 전에도 헛것을 보았다. 요즘 쇄국과 개국을 둘러싸고 조정에 분란이 잦도다. 무역 관련 고심이 깊어 ‘내이부(內耳部·역주: naver)’에 영파시(寧波市·중국 저장성의 무역 도시인 닝보시)를 검색했더니 글쎄 웬 아녀자들의 영상이 돌출하여 화들짝하였구나. 우리 비(妃)가 볼까 두려워 황급히 창을 닫았다.”전하, 그것은 영파시가 아니라 영파씨이옵니다. 요사이 백성들 사이에 회자되는 젊은 놀이패이옵니다.“짐은 ‘양송이의 사랑’을 좋아한다.”
전하, 그것은 양파 씨이옵니다. 곡목은 ‘애송이의 사랑’이옵니다…. 놀이패 영파씨는 위연정, 지아나, 정선혜, 한지은, 도은의 다섯 처자로 구성됐습지요. 지난해 10월 등청할 때부터 희귀한 힙합 걸그룹을 표방해 ‘하이부의 막내딸’, 아니, ‘국힙의 딸들’이란 별칭을 득한 신인이온데, 올 3월 말 내놓은 신곡 ‘XXL’이 ‘유투부(流愉部·역주: youtube)’에서 일주일 만에 1000만 조회수를 돌파했사옵니다. 현재는 3000만 뷰를 넘겼습지요. 바로 이 노래이옵니다.[ ♪영파씨 ‘XXL’ ]
“재생 12초 만에 흐르는 이 힙하디 힙한 비트는…! 짐의 최애곡 ‘귀가가(歸家歌·Come Back Home)’가 아닌가! 서태지와 아이들! 짐도 알아요!”
전하, 아무리 그래도 누추한 산장에서 곤룡포 자락을…. 회오리춤까지 추옵시면…. 아무튼 정확히 보셨사옵니다.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 실렸습죠. 실제로 가출 청소년들이 이 노래 듣고 귀가했다는 ‘전설의 고향’급 노래이옵니다. 당시 그런 사회현상이 지상파 TV 9시 메인 뉴스 기사로도 소개됐었지요. 사이프레스 힐 같은 미국 힙합 그룹의 영향이 일부 느껴지긴 하오나, 백 년 가요사에서 가장 힙한 비트와 랩을 꼽을 때 강력 후보로 올릴 수밖에 없는 그 곡이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
“그렇다면 양파 씨는 지천명(50세)쯤 되는 중고 신인 집단인가.”
전하, 영파씨는 영, 파씨이옵니다. ‘젊은 패거리(Young Posse)’라는 뜻이옵니다. 지천명이 아니오라 방년, 아니 이팔청춘에 더 가깝습죠. 멤버 생년이 2004년생부터 2009년생까지이니 ‘Come Back Home’이 나올 때는 자취조차 없던 가객들이옵니다. 하오나 ‘XXL’에는 1990년대에 대한 오마주가 충만하옵지요.
“XXL은 이태원 아니던가. 안 그래도 선왕께서 물려주신 엑스라지 곤룡포가 영 거동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여봐라. 아무래도 명일엔 동빙고에 들러 빙수를 흡입한 연후에, 이태원으로 행차하여 의복도 구입하고, 또 연회장에도 들러 백성들 최신 춤사위도 엿보아야겠다.”
전하, 그 투엑스라지가 아닌 것으로 아뢰옵니다. 물론 영파씨 놀이패가 제창하는 ‘Extra, extra, double extra large’라는 반복구가 있긴 하오나 90년대 오마주로 읽으면 새로운 것들이 들리고 보이옵니다. 먼저, ‘XXL’은 1997년 뉴욕에서 창간한 미국의 대표적인 힙합 매거진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Baggy pants, 내려 입고 triple axel’이나 ‘아빠 t-shirt, 입고 하이터치, watch me’에서는 어쩐지 부모 세대의 패션을 따라 입고 플렉스하는 젊은 가객들의 일상이 절로 상상되기도 하옵니다. X세대의 헐렁한 패션인 줄 아뢰옵니다.“어허, 과인의 곤룡포를 디스하는 것인가. 안 그래도 최근 한 처자가 우리 ‘X저씨’를 업신여기는 언행으로 구설에 오르더니 천하에 삼강오륜, 군위신강이 땅에 떨어졌다. 게 누구 없느냐. 이자를 매우 쳐라!”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X세대란 베이비붐 이후 세대로서 1965년생부터 1979년생까지를 가리키오며 특징을 정의하기 모호해 ‘X’라 명명된 세대이옵니다. 1992년 데뷔해 1996년까지 활동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X세대의 우상이자 케이팝 시조새입지요. ‘XXL’에서는 ‘90’s 키워드’를 몇몇 더 발견할 수 있사옵니다. ‘Maybe, maybe, baby version, Wu-Tang Clan’ 하는 부분이 들리시옵니까. 이는 1992년 뉴욕에서 결성된 전설적인 힙합 놀이패 우탱클랜에 대한 오마주이옵니다. 참고로 우탱클랜은 중국 무협지에 즐겨 등장하는 무당파를 가리키옵지요.
“안 그래도 끊이지 않는 조정의 당파 싸움에 진저리가 난다. 차라리 무당파(無黨派)가 낫나 허니, 여봐라. 영파씨 다섯 처자에게 각 종5품 관직을 하사하라.”
전하, 이 무당파는 불교를 대표하는 소림(少林·Shaolin)에 대적하던 도교 집단 무당파(武當派)이옵니다. 우탱클랜이라는 놀이패는 아프리카계임에도 아시아의 무협 영화에 꽂혀 그 세계관을 기틀로 삼았습죠. 그들의 1993년 등청 음반 제목은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이는 이소룡 주연의 1973년 영화 ‘용쟁호투(Enter the Dragon)’, 류자량 감독의 1978년작 ‘소림36방(The 36th Chamber Of Shaolin)’을 혼효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멀리 미국 동부의 도령들이 어찌하여 동방의 무협을 안다는 말인가. 여봐라. 이자의 머릿속에 마구….”
잠깐! 전하, ‘마구 쳐라’ 아니면 ‘마구니가 가득하다’만 나오면 쇤네의 모골이 진정 송연해지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힙합 문화에 무협 세계관이 빈발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있사옵니다. 근년에는 켄드릭 라마도 ‘쿵푸 케니(Kung-Fu Kenny)’라는 ‘부캐’를 동반했으니까요. 1980, 90년대 미국 대도시 빈민가의 아프리카계 밀집 지역에서는 주머니가 가벼운 동시상영 극장이 청소년들을 사로잡았고, 상대적으로 수입가가 싼 홍콩 무협물을 그런 극장들에서 자주 틀어준 것이 영향을 끼쳤다는 학설이 현재까지는 유력하옵니다.“그건 그렇고. ‘아직 모자라, I'ma get it one, two, three, four, five (Six)…’ 하는 삽입구와 ‘귀가가’의 비트 사이에서 오묘한 음악적 낙차가 느껴진다. 저 힙하고 육중한 반음계 비트가 등장할 때 그래서 더 청신경이 바짝 서는 느낌인데….”
잘 보셨, 들으셨사옵니다. ‘아직 모자라, I'ma get it…’에 쓰인 4개의 음, 즉 ‘파#’, ‘솔#’, ‘라’, ‘시’는 듣는 이로 하여금 c#단조의 자연단음계에서 제4음에서 제7음까지로 느껴지옵니다. 허나 저 ‘Come Back Home’ 비트의 으뜸음 ‘레!’가 뚝 떨어지는 순간에는 반음 상승한 d단조로 조바꿈(轉調)이 일어나옵지요. 영화의 점프 컷(jump cut) 같은 장면 전환 바이브는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그저 귀한 비트에만 옥체를 맡겼는데 뜯어볼수록 기특한 곡이다.”
굳이 더 뜯어보자면 ‘리구개청 는없 수할 상예 swe-swervin'’에서 한국어 가사는 ‘예상할 수 없는 청개구리’를 거꾸로 한 것인데,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실린 ‘내 맘이야’에 ‘라해로꾸꺼은말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바, 이 또한 헌사가 아닌가 의심되옵니다. 또 영파씨가 5월 5일 어린이날에 후속곡으로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나의 이름은 (ROTY)’ 가사를 보다 또 그자를 발견했사옵니다. ‘내 친구들 밤에 학원 가 차를 타/나는 홀로 연습실서 하여가 I don't lie’ 하는 구절에서 정확히 서태지와 아이들 2집(1993년) 타이틀곡 ‘하여가’가 등장하옵지요. 1979년생 X세대 프로듀서 키겐의 영향이 아닌지 짐작할 따름이옵니다.
한편, ‘XXL’에 나오는 ‘에몽 빅라이트 켜고 먹어 치워 머핀’에서 에몽은 비추면 뭐든 커지게 만드는 빅라이트라는 도구를 쓰는 만화 속 인물 ‘도라에몽’으로 추정되는데, 도라에몽의 작가인 후지코 F. 후지오가 사망하며 도라에몽 연재를 완결하지 못한 해가 또한 1996년이니 이 역시 느슨한 90년대 오마주로 소인은 보고 있사옵니다.
[ [MV] YOUNG POSSE(영파씨) _ ROTY(나의 이름은) ]
“1990년대가 도대체 어떤 시대이기에 이다지도 절절하단 말인가. 그리고 저 수퇘지, 아니 서태지라는 자는 어떤 인물이기에 올 초 에스파의 ‘시대유감’에 이어 근 30년 세월을 건너뛰어 재삼 젊은이들의 헌사를 득하는지…. 어서 저 서가라는 자를 포도청으로 잡아들여 경복궁으로 압송하도록 하라!”(우르릉, 콰콰쾅! 그때 산장에 일대 벽력이 들이치더니 ‘투두둑’ 우박이 퍼붓더라. 관종과 산장지기는 이를 피해 급히 안채를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둘 사이를 스치는 낯선 인기척. 두 사람, 동시에 ‘헛것을 보았나’ 하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