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한 “음악은 나의 모국어…브람스의 강력한 힘 느끼게 될 것”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인터뷰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결과를 위한 집착보다 연습 과정에 집중해야"
재닌 얀센, 율리아 피셔와 함께 ‘21세기 3대 바이올린 여제(女帝)’로 불리는 미국 출신 연주자가 있다. 보통의 음악가들은 평생 한 번 받아볼까 말까 한 그래미상을 세 번이나 품에 안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45)이다. 그는 10대 시절에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명문 악단들의 솔리스트로 발탁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힐러리 한의 전성기는 30년째 현재진행형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상(2021년), 에이버리 피셔 상(2024년) 등 최근까지도 국제적 권위의 음악상을 휩쓸고 있다.

세계적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그와 비견될 만한 연주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극찬한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한국을 찾는다. 오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해플리거와 함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프로그램을 선보다. 내한 리사이틀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서면으로 만난 힐러리 한은 “음악은 내게 모국어와 같다”며 “브람스의 음악 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결과물을 하루빨리 나의 언어, 소리로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브람스가 남긴 세 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바이올린 소나타’로 불리는 명작이다. 힐러리 한은 “흔히 대작(大作)을 연주하기 위해선 많은 인생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 것 같다”며 “아주 어릴 때부터 수없이 브람스 소나타를 연주해왔지만, 이번처럼 작품과의 내적 친밀도가 높아지고, 작품을 해석하는 시야가 넓어졌단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저 귀가 끌리는 대로만 선율을 따라간다면 브람스 소나타 고유의 강력한 힘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힐러리 한이 잘하는 건 연주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100일 동안 연습 영상을 팬들과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프로젝트 ‘100일간의 연습(#100daysofpractice)’도 그의 일환이다. 힐러리 한은 “무대 위에서 솔리스트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결과가 아닌, 무대 아래에서 매일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는 연주자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영상에 달린 글들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많은 연주자가 연습을 마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처럼 여긴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연습에 엄청난 압박을 느끼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죠. 그러나 연습은 연주자 일상 속에 언제나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기에 건강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충분한 여유와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집착보단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것, 연습에선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얼마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삶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찬찬히 풀어냈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무대에 설 수 없었을 땐, 마치 나의 언어로 소통할 곳이 전부 사라지고 정체성을 잃어가는 듯한 절망감까지 느꼈다”며 “그만큼 나의 인생에서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치 나의 일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제게 이토록 소중한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작곡가의 세계를 공유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연주자에게 이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