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 불린 공무원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무슨 일 있었길래

DEEP INSIGHT

'선관위냐, 神관위냐'
셀프로 국제기구·케이블TV 차려 혈세 '펑펑'

전례 없는 국제기구 설립
"선거관리 시스템 수출하겠다"며
年 수십억 예산에도 감독 안받아
수출한 개표기 조작 논란 '굴욕'도

정책 홍보용 '한국선거방송'
자체 콘텐츠 없이 90%가 재방송
105억 '헛돈' 쓰고 5년 만에 폐국

금품은 상급자의 '성의 표시'
선거 출마하면 '乙'되는 선관위원
직원들에 현금 뿌려도 징계 없어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공무원들이 맞는지 의심했습니다.”

과거 10년간 선거관리위원회의 경력직 채용 비리를 조사한 감사원의 지난달 30일 발표 내용을 접한 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의 말이다. 선관위가 시행한 167건의 경력직 채용마다 비리와 규정 위반이 발견됐고, 선관위 사무차장의 아들을 직원들이 ‘세자’로 부르며 특혜 채용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선관위의 전횡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며 감사의 사각지대 안에서 각종 전횡을 저질러왔다.

산하 국제기구, 예산만 쓰고 견제 안받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선관위는 국내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국제기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선거 업무 지원을 명분으로 2011년 설립한 세계선거기관협의회다. 정부는 선관위를 통해 이 기구에 많게는 한 해 80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1, 2대 사무총장은 전직 선관위 사무총장이 맡았다. 하지만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정부 감독이 미치지 않는다. “예산만 지원받고 견제는 받지 않는 산하기관을 세운 최초 사례”라는 평가가 관가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세계선거기관협의회 활동과 관련한 문제점은 외신을 통해 전해진다. 2017년 말 콩고민주공화국 주재 유럽 각국 대사들은 한국 대사에게 “협의회를 통해 지원된 전자투개표기가 콩고 대선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공개적인 우려를 전했다. 이듬해 이라크에서도 한국에서 수출한 개표기기와 관련해 선거 조작 논란이 제기됐다. 협의회는 엘살바도르에도 광학판독개표기를 수출하려다가 “부정선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외교부 지적에 사업을 중단했다.선관위는 정책 홍보를 위해 자체 케이블TV 방송국도 설립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운영한 한국선거방송이다. 5년여간 104억6000만원을 썼지만 재방송 비율이 연평균 92%에 이르렀다. 출범 첫해부터 국회와 감사원 등이 예산 낭비를 지적했지만 선관위는 꾸역꾸역 운영하다가 2022년 8월에야 방송사 문을 닫았다.

직원들 윤리의식도 도마에

선관위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7월 감사원은 선관위 직원 128명이 선관위원 등에게 금품을 받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명절 떡값은 물론 해외 여행과 골프 여행 등에 동행해 100만원 이상의 경비를 제공받기도 했다. 각 교섭단체가 추천하는 중앙 및 17개 지방 선관위의 선관위원은 지방선거와 총선에 출마하는 사례가 많다. 후보 등록과 동시에 감시 대상이 되는 인사들에게 선관위 직원들이 공공연하게 현금을 받아온 것이다. 감사원 감사 전에 선관위는 내부적으로 몇 건의 금품 수수 사례를 파악했지만 처벌하지 않았다. “직급상 상급자인 선관위원이 사무처 직원에게 금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에서는 “직원들의 행동도, 선관위의 대처도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직 전반에 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인식도 옅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선관위는 외부 계약 9354건 중 83.1%인 7774건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전국 지자체의 수의계약 비중은 2022년 기준 평균 31.8%에 불과하다.수의계약 중에는 선관위 업무와 큰 관련성이 없는 콘텐츠 제작, 조형물 건립 등 논란 소지가 있는 내용이 다수 발견됐다. 하지만 선관위는 감사원의 정기 감사를 받지 않아 문제 여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는 “감사기구를 사무처에서 분리하고, 개방형 감사관을 임용하는 등 자체 자정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본연의 업무는 소홀

예산 낭비와 금품 수수로 갖은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작 공정선거 관리를 위한 노력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는 2022년까지 주요 선거에 사용된 전자개표기를 민간 창고에 보관했다. 개표 과정에서 전자개표기가 갖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상당 기간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표를 방해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창고에 침투해 기기 오작동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정보 공개를 꺼려 부정선거 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예컨대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개별 투표소에서 투표한 총인원이 등록된 관내 선거인보다 많은 사례를 들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는 다른 지역 유권자도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지만, 선관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투표소별 관내 투표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경목/배성수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