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중독'에 빠진 사회… 해결책 없는 게 걱정 [서평]

걱정 중독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452쪽│1만9500원
게티이미지뱅크
891권. 현재 시중에 나온 영어책 가운데 "stop worrying(걱정을 멈춰라)"이 제목에 포함된 가짓수다. "positive thinking(긍정적 생각)"으로 유혹하는 책은 923권에 이른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구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걱정이 이처럼 거대한 화두로 떠오른 걸까.

최근 출간된 <걱정 중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이 현대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전반적인 '정신 건강'은 퇴보했다는 분석이다. 저자 톨란드 파울센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 악화를 두고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결과다.

이들의 머릿속은 보기보다 복잡했다. '투자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애인과 헤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던진 돌멩이가 극심한 환경파괴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전체 유럽인의 3분의 1 이상이 이러한 강박장애(OCD)에 가까운 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lt;걱정중독&gt;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복복서가, 452쪽, 1만9500원
돈이 능사는 아니다. 저자가 132개국 갤럽 조사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높을수록 자기 삶에서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등 병증은 자주 나타났다. 높은 소득이 삶을 병들게 만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상품과 서비스의 대량생산이 걱정을 지워줄 만능열쇠가 아니란 얘기다.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은 게 때로는 독이 됐다. 저자는 미국의 한 기업의 사례를 예로 든다. 이 회사는 직원들한테 임금은 근무시간 단축을 제안했다. 월급은 그대로 두고 파트타임이나 재택근무 등 선택지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 제안을 받아들인 직원은 전체 2만1000명 중 53명에 불과했다. 저자는 그 이유로 "불확실성과 무한한 선택지를 견대지 못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든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회사 내부에선 직원 각자가 해야할 일이 비교적 명확하다. 반면 회사 바깥에선 대부분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금방 해결한다는 점에서 회사는 안전지대에 가깝지만, 바깥세상엔 마땅한 위기 대처 매뉴얼이 없다. 걱정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한텐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살게 되는 셈이다.

책은 보통 자기계발서들이 내놓는 '걱정하는 당신이 걱정된다면, 걱정하기를 중단하라'라는 식으로 조언하지 않는다. 걱정을 우리 사회의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걱정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50쪽에 걸쳐 장황하게 풀어놓은 해법을 요약하면 "무지와 두려움을 자각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정도다.현대인의 걱정이 이처럼 마음 먹은 대로 손쉽게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나.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게 걱정이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