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또다시 해양 패권의 卒로 전락하나

박동휘 산업부 차장
‘앨프리드 머핸의 유령이 또다시 세상을 떠돌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해양 패권을 쥐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을 다루면서 19세기 후반 미국의 군사 전략가인 머핸을 소환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머핸의 해양력(sea power) 이론은 미국의 운명을 바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확보하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지배하는 해양 제국의 지위에 올랐다.머핸의 이론은 제국주의 일본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군신으로 추앙받는 도고 헤이하치로의 참모였던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머핸의 제자다. 러시아 발틱함대를 침몰시킨 일본의 해군력은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던 청년 안중근마저 감동시켰다.

美·中의 해양 해결

한반도의 전쟁사는 늘 육군력과 연결돼 있었다. 한족과 유목민의 충돌 여파가 한반도로 번지곤 했다. 북쪽을 방비하기에 급급했던 한반도의 지배 세력은 바다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 결과는 망국으로 귀결됐다. 100여 년 전 쓰디쓴 망국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엔 중국의 야심에 잡아 먹힐 위기다.

중국이 선박 건조를 전략 산업으로 정한 것은 2001년이다. 2015년엔 ‘중국 제조 2025’의 10대 최우선 육성 산업 중 하나로 조선업을 선정했다. 다른 전략 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조선산업 지원은 수익성에 좌우되지 않는다. 컨테이너선을 포함해 전 세계 무역선을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해양물류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목표는 화웨이의 통신 장비로 전 세계 통신 네트워크를 잡으려 한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의 조선 ‘빅3’가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의 수주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기업 수익성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해양 패권이라는 측면에선 분명 마이너스다.

중국은 해외 주요 항만 운영권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FT에 따르면 중국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항만은 96개다. 이 중 36개는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100위권에 있다. 중국 본토에만 100위권 항만이 25개나 있다. 글로벌 톱100 항만의 절반이 중국 손아귀에 있다는 얘기다.

패권 향한 중국식 '변검'

미국이 지난해 7월 국방수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LOGINK’라는 중국의 해상 물류 데이터 플랫폼을 제재 대상에 올린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트래드링크에 따르면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2008년 중국 내 16개 항구로 시작한 LOGINK는 현재 아시아 12개, 유럽 9개, 중동 3개 등 중국 외 지역의 최소 24개 항만과 협력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인천, 광양, 울산, 평택 등 국내 항만도 LOGINK를 활용한다.

LOGINK는 중국식 변검의 여러 가면 중 하나다. 화웨이, 틱톡, 테무와 본질은 같다. 중국은 데이터가 현대 전쟁의 총칼임을 잘 안다. 예컨대 해상 물류를 통제할 수 있다면 중국은 알리, 테무, 쉬인에 특혜를 줄 수 있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무기다. 정화의 함대를 스스로 침몰시킨 중국은 600여 년 만에 해양 패권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진군하고 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