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K중재 위상…기업도 인식 바꿔야

현장에서

로펌들 '국제중재' 경쟁력 커져
해외 대신 韓 중재지로 삼으면
기업간 분쟁 효율적 해결 기대
“한국은 이미 국제중재 시장에서 중요한 플레이어입니다.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서울을 중재지로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8일 폐막한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A) 홍콩 총회에서 만난 치안 바오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은 ‘한국이 중재허브로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바오 부원장은 세계에서 손꼽는 중재인으로, 지난 5~8일 홍콩에서 열린 ICCA 총회 프로그램을 주관했다. ‘국제중재 올림픽’으로 불리는 ICCA는 2년마다 열리는 행사다. 올해 총회에는 1400여 명의 중재 전문가가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국내 언론사 중 유일하게 참석한 기자가 만난 중재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은 자국을 중재지로 선택하는 데 너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중재 사건도 해외에서 심리를 진행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국내 기업 간 중재 사건에서 해외를 중재지로 선택한 사례도 있다. 이로 인해 한국 내 국제중재건은 갈수록 줄고 있다. 2022년 대한상사중재원이 접수한 국제중재 사건은 38건으로 2019년 70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기업들은 거래 계약 시 분쟁 발생에 대비해 준거법과 중재지를 미리 정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과 거래할 때는 준거법과 중재지 선택에서 국내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해외 기업이 선호하는 해외 법과 제3국 중재지를 수용하는 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세계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은 충분한 바게닝 파워(교섭력)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재지 선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홈그라운드’를 포기할 경우 생기는 불이익은 분명하다. 제3국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고, 생소한 해외 법을 적용받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나아가 중재인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이는 한국의 중재 법률서비스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임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바오 부원장도 “한국 로펌의 국제중재 변호사들은 업계에서 오래전부터 인정받아왔다”며 “뛰어난 한국의 법조 인력은 ‘중재 허브’로 발돋움하는 데 큰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중재지와 준거법 선택은 기업의 자유지만, 이를 적극 활용할수록 분쟁 해결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한국의 국제중재 역량 향상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한국식 국제중재’의 가치를 재발견할 때다.

홍콩=박시온 사회부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