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기초화학 사업 과감히 구조조정"

대대적 '자산 경량화' 추진

생산만 하면 팔리던 과거와 달리
中 저가 물량 공세에 적자 지속
이훈기 대표 "양적성장 않겠다"

고부가 사업에 인력 등 전환 배치
돈되는 첨단소재·정밀화학 키우고
분리막 대신 양극박·동박 집중
“더 이상 양적 성장에 목매지 않겠다. 기초화학 부문은 ‘자산 경량화’ 작업에 들어가겠다.”

국내 2위 석유화학기업인 롯데케미칼의 이훈기 대표(사진)가 9일 1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과감한 사업 재편을 처음 언급했다. 이 대표는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어려움을 겪는 범용 석유화학 중심 사업 구조를 혁신적으로 개편할 것”이라며 “(사업 재편 후) 남는 인력과 자원으로 고부가가치 신사업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과의 출혈경쟁을 멈추고, 아직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이 자산 매각 등 추가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본지 4월 17일자 A12면 참조

○양적 성장→질적 성장으로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그동안 양적 성장에 매달렸다. 세계 석유화학 제품의 40%를 소비하는 중국이 20년 넘게 성장한 덕분에 이런 전략은 먹혔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세계 석유·화학산업은 2001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연평균 10%씩 성장했다.롯데케미칼도 이런 기조를 따랐다. “20조원인 매출을 2030년까지 50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게 1년 전이다. 이 비전에는 플라스틱 원료인 페트(PET)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 매출을 2022년 12조2000억원에서 2030년 20조원으로 늘린다는 계획도 담겼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중국 내수시장이 쪼그라들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팔 곳을 잃은 중국 기업들이 수출에 나서면서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이 폭락한 것. 2022년 3월 t당 1380달러이던 PET 가격은 지난달 1100달러로 20.2%나 떨어졌다. 롯데케미칼이 지난 2년간 1조원 넘는 적자(2022년 7626억원, 2023년 3477억원)를 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케미칼은 올 1분기에도 135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선택과 집중’ 나서는 롯데

롯데케미칼은 1년 전 발표한 ‘양적 확대’ 목표를 접고 ‘질적 성장’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주요 사업군을 △기초화학 △첨단소재 △정밀화학 △전지소재 △수소에너지 등 5개 분야로 나누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쓰기로 했다. 벌이가 시원치 않은 분야는 접고 돈 되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다.중국 기업들과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초화학 분야는 추가 구조조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미 도료, 불포화 수지 등의 원료인 고순도 이소프탈산(PIA)을 생산하는 울산 1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PET 공장 생산량도 줄이고 있다. PET의 중간 원료인 테레프탈산(PTA)을 제조하는 파키스탄 공장 매각 작업도 재개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공장 가동 중단과 생산량 감축에 따른 유휴 인력을 고부가가치 사업에 전환 배치하고 있다”며 “추가 사업 재편 내용을 발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익을 내는 첨단소재와 정밀화학 부문은 인력과 자원을 추가 투입한다. 두 부문은 지난 1분기 각각 444억원, 10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대표는 “첨단소재와 정밀화학을 핵심 사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 소재 부문은 양극박과 동박을 중심으로 키운다. 회사 관계자는 “전해액 유기용매와 분리막 소재 분야에 뛰어들면서 역량이 분산된 측면이 있었다”며 “양극박과 동박에 집중하고 추가 확장 여부는 나중에 생각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이 대표는 “현금흐름 중심 경영으로 재무 건전성을 견고히 하겠다”며 “투자 리스크를 관리하고 더 많은 잉여현금을 창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