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싱은 몰라도 조지 포먼이 45살에 챔피언 먹은 건 안다”

[arte] 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해

영화
최근에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면접을 본 일이 있었다. 한정되어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와 경쟁하는 상황은 오랜만에 겪는 일이었다. 면접장에서 스쳐 가며 다른 지원자들과 마주쳤다. 저마다의 간절한 사연들이 그려졌다. 발표를 기다리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류승완 감독의 2005년 작 <주먹이 운다>이다.

태식(최민식)은 왕년에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였다. 그러나 현재, 과거의 영광은 뒤로한 채 도박 빚을 지고 ‘거리에서 매 맞는 복서’로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태식은 하나뿐인 아들과 멀어지게 생겼다. 그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태식의 거리 생활을 돕던 우동 가게 사장 상철(천호진)은 한심한 태식에게 이렇게 말한다.“야……. 나는 복싱은 잘 몰라도 조지 포먼이 45살에 챔피언 먹은 건 안다.”
영화 '주먹이 운다' 스틸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그러나 앉을 수 있는 의자의 개수는 정해져 있다. 상철은 태식에게 이렇게도 말한다.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 너만 있는 게 아니다.” 이는 <주먹이 운다>의 주제를 내포하는 대사이다.

태식의 반대 코너에는 '세상에 사연 있는' 또 다른 사람, 상환(류승범)이 있다.상환은 절도, 폭행, 금품 갈취를 밥 먹듯이 하는 동네 양아치다. 경찰서에 끌려간 상환을 아버지가 없는 형편에 합의금까지 주며 빼 오지만, 곧바로 또 사고를 치고 소년원에 끌려가고 만다. 소년원에서 악바리 근성에 깡다구 하나만큼은 제대로인 상환을 눈여겨본 교도 주임은 상환에게 권투를 권한다. 권투부에 들어간 상환은 점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데, 그 와중에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쓰러진다. 이제 상환은 쓰러진 할머니를 위해서 뭔가 해내 보이려고 한다.
영화 '주먹이 운다' 스틸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태식과 상환, 두 사람은 삶의 벼랑 끝에서 신인왕전에 나가고 결승에서 맞붙게 된다. 관객은 두 사람의 사연을 모두 알고 있다. 39살 인생 막장의 가장과 19살 소년원 출신 복서의 승부. 둘 다 소중한 사람이 있고,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뚜렷하다. 둘 다 밑바닥 인생에서 한 줄기 빛이 절실하다.

관객들은 패자가 없기를 바라게 되고 그냥 둘 다 승리하게 해 주면 안 되냐고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고 승자가 착석할 수 있는 의자는 하나다. 과연 감독은 어떤 결말을 택했을까. 권투 영화는 늘 인간 승리를 다룬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권한다. 가슴 속에 다시금 끓어오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주먹이 운다' 스틸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대건 소설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