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에서도 전공의 수련…상급종합병원, 중증에 집중해야 수익↑(종합)

대형병원 '전공의 의존' 타파하고, '전문의 중심' 유도
의료개혁특위 2차 회의…상급종합병원은 '중증·필수진료' 집중
'필수의료 수가' 집중 인상…의사 법적부담 완화 등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정부가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상급종합병원 같은 대형병원뿐 아니라, 지역 종합병원이나 의원에서도 수련받을 수 있도록 전공의 수련 체계에 메스를 댄다. 환자들이 일단 큰 병원부터 찾아 상급종합병원과 동네의원이 경쟁하는 구조를 없애기 위해 각급 의료기관의 역할을 명확하게 분담한다.

필수의료의 의사 부족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보상체계를 개편해 저평가된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한다.

정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6개 부처 정부위원과 민간위원 16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논의했다.
◇ 전공의, 종합병원 아닌 '의원'에서도 수련한다
특위는 이날 회의 후 "전공의가 상급종합병원, 지역종합병원, 의원에서 골고루 수련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 간 협력 수련체계를 구축하겠다"며 "수련 중 지역·필수의료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공의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도제식으로 수련을 받으면서 과도한 근무 시간에 시달리고, 병원은 전공의들에게 과잉 의존하는 지금의 수련 체계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 따르면 수련병원은 복지부 장관이 의료기관,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보건관계기관 중 지정하게 돼 있어 현행 법체계에서도 다양한 의료기관이 수련병원 역할을 할 수 있다. 노연홍 의료개혁특위 위원장은 "현재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거친 전문의 과반이 지역 중소병원이나 의원에서 근무하지만, 상급병원과 중소병원, 의원은 환자군과 진료 내용이 달라서 현재의 수련체계로는 실제 현장에 맞는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1∼3차 의료기관에 걸친 수련의 다변화는 중증 진료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가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다양한 의료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위는 의원 등 1차 의료기관까지 연계된 수련 프로그램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특위와 산하 전문위원회에서 전체 수련체계를 어떻게 편제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어떤 진료과나 의료기관에서 몇 개월을 수련할지 등은 논의를 통해서 구체화하겠다"고 했다. 특위는 이런 체계 개편이 단시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을 점차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는 방안도 집중 검토한다.

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단일 전문과목 수련병원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수련병원은 모두 248곳이다.

이 가운데 서울시내 주요 상급종합병원인 '빅5'를 포함한 주요 100개 병원에 전체 전공의(1만3천여명)의 95%가 근무해왔다.

근로시간 단축 등 국가 차원의 전공의 수련·교육 계획도 수립하고, 병원별 수련환경 평가를 강화해 수련병원 지정 및 전공의 배정에 반영하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노 위원장은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는 현재 상황을 고려해 전공의 업무환경을 최우선으로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데 대다수 위원이 뜻을 모았다"며 "위원들은 주당 총근로시간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연속근무를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계적으로 (줄이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 경증환자 상급종합병원 가면 본인부담↑…의사 소견서도 명확해야
기형적이었던 의료공급·이용 체계를 정상화해 의료기관 급별 역할도 명확히 구분한다.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환자들은 중증도와 상관없이 대형병원부터 찾아간다.

경증 외래 환자를 두고 상급종합병원과 의원이 경쟁하는 구조인데, 여기서 탈피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이 환자의 질환과 중증도에 맞춰 명확히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의료 공급체계를 구축한다.

상급종합병원 등 3차 의료기관은 중증·필수진료 기능에 집중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중증 질환 진료 비율이 39.8%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

또 전체 인력의 10명 중 6명(63.7%)가량이 전공의인 상급종합병원도 있었다.

노 위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중증 질환의 진료·연구·교육에 집중하는 바람직한 운영 모델이 확립되도록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방안을 조속히 시행할 수 있도록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차 의료기관은 응급·중증진료 역량을 갖추고 다양한 수술을 하는 '포괄 종합병원', 특정 중증질환 진료에 강한 '특화 강소병원', 아급성(급성과 만성의 중간) 진료 중심의 '회복기 병원' 등으로 기능을 나눠 육성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이런 육성 체계를 도입, 우수·거점병원을 지정하는 등 대상 의료기관을 단계적으로 확대한 뒤 전면 적용을 검토한다.

경증 환자나 2차급 병원 의뢰서가 없는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경우 본인 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한다.

의뢰서도 종이가 아닌 의사의 명확한 소견을 포함한 전자의뢰서로 단계적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 저평가된 중증·필수의료 보상 높인다…'기능중심 보상' 전환
필수의료 분야에서의 의사 이탈 현상을 막기 위해 더 큰 보상을 주는 방식의 보상체계 개편도 박차를 가한다.

정부는 앞서 2028년까지 필수의료 분야에 10조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특위는 보상 강화 대책의 구체적 추진방안을 논의하고, 보상체계 개편을 검토한다.

특히 수가(의료행위 대가) 개선이 필요한 항목 가운데 우선순위가 높은 항목이 우선 개선되도록 하고, 의료비용 분석조사를 기반으로 저평가된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집중적으로 인상한다.

현행 의료기관 종별 가산금(7천억원)과 의료 질 평가 지원금(8천억원), 적정성 평가 지원금(300억원)을 통폐합해 기계적 종별 가산이 아닌 '기능 중심 보상'으로 보상체계를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진료량을 늘리는 것이 아닌, 중증도에 맞는 환자를 효과적으로 진료하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평가 체계를 전면 재정비한다.

노 위원장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는 환자들의 50% 이상이 경증 또는 중등증(중증과 경증의 중간) 이하의 환자인 상황을 타개하려면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진료에 집중하도록 보상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 진료에 집중할 때 수익이 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수익이 줄도록 보상체계를 재설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필수의료에 의료사고 보험료 지원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와 관련해 환자의 충분한 권리 구제를 위해 의료분쟁 조정·중재 제도 혁신을 모색한다.

분쟁 조정절차 개시 요건을 확대하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위원에 대한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인다.

중재원에 따르면 2019~2023년 이 기관에 접수된 조정신청 1만1천407건 가운데 각하 건수는 3천881건(각하율 34.0%)에 이른다.

정부가 올해 2월 마련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서 환자 권익 증진과 의사 보호를 조화시키는 방안도 모색한다.

필수의료 진료과 중심으로 의료사고 보험료 지원을 검토하고, 피해자 소통·상담, 의료기관 안전관리를 지원할 '의료기관 안전공제회'(가칭) 기능과 역할도 구체화한다.

정부는 공문과 개별 연락을 통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에 특위 참여를 요청한 데 이어 이날도 참여를 촉구했다. 노 위원장은 "의료개혁특위 논의는 초저출생과 초고령사회라는 거대한 시대 전환 속에서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틀을 다시 짜고 향후 20∼30년의 의료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며 "의료 현장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가 개혁의 동반자로서 특위 논의에 조속히 참여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요청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