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 노리고 1억 형사공탁했지만…"피해자 용서없으면 안 통해"

선고 직전 잇단 기습 공탁…재판부 "형 감경에 유리하지 않다"
법조계 "돈으로 죗값 축소 지양해야…제도 필요성은 상존"
"피고인은 피해자 측 변호인과 합의금에 관한 협의를 하던 중 일방적으로 공탁금을 냈다. 피해자 측이 이 공탁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했고, 피고인이 변제해야 할 손해는 1억원을 상당히 초과하므로 원심의 형을 감경할 유리한 정상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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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법 제2형사부(김도형 부장판사)는 지난 2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 된 A(26)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1일 오후 4시 5분께 전북 완주군 봉동읍의 한 도롯가에서 길을 걷던 40대 부부를 차로 들이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갑자기 달려드는 차를 피하지 못한 남편은 크게 다쳤고, 아내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0.08% 이상)를 훌쩍 넘는 0.169%였다.

A씨는 1심에서 6천만원, 항소심에서 4천만원 등 모두 1억원을 형사 공탁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의 거듭된 감형 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처럼 주요 사건에서 감형을 노린 피고인의 형사공탁이 최근 들어 선처로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법원은 '피해자의 용서가 전제되지 않은' 선고 직전의 기습 형사공탁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아량과 관용을 베풀지 않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정성민 부장판사)는 중학교 동창생을 폭행해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B(20)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린 글로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B씨는 3천만원에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선고 직전 이를 형사 공탁했다.

재판부는 B씨를 향해 "이 사건 이후 1년 3개월이 지났는데 피해자와 그 부모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마음이 있었다면, 피고인은 매달 노동을 통해 피해자의 치료비를 지원했어야 했다"며 "그러나 피고인은 그동안 이러한 피해복구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았다"고 꾸짖었다.

이어 "피고인의 범행으로 당시 19세에 불과했던 피해자는 식물인간이 됐다"며 "피해자는 피고인과 중학교 때부터 우정을 쌓았고 여행을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생각했는데 이제 생존을 위해 인공호흡기와 타인의 보조가 전적으로 필요해졌다"고 지적하며 양형 기준 이상의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이런 나무람은 축협 직원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전북 순정축협 조합장 고모(62) 씨에게도 이어졌다.

전주지법 남원지원 형사1단독(이원식 판사)은 지난달 2일 특수폭행 및 특수협박, 강요, 근로기준법 위반, 스토킹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면서 "이 사건은 일반적인 주취 폭력 사건보다 죄질이 훨씬 안 좋다"고 질타했다.

고씨는 선고를 한 달여 앞두고 피해 직원 4명에게 300만∼500만원씩 모두 1천600만원을 형사 공탁했으나 재판부는 "집행유예는 전혀 적절하지 않고 피고인에 대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고씨에게 폭행당한 직원들은 공탁금을 수령하는 대신 '엄벌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고씨는 이 형이 확정되면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조합장직을 잃는다.

법조계는 최근 재판부의 이러한 판단이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한다면서도 형사공탁 제도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법무법인 모악 최영호 변호사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반성하지 않고 돈으로만 죗값을 축소하려는 시도를 최근 법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추세"라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볼 때도 이러한 방향을 옳게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형사 공탁 제도는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 피고인 측이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이 일정 금액을 법원에 맡겨두는 제도인데, 이 자체를 부정한다면 범죄 피해자가 손해를 회복할 길이 요원해지는 문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충 돈으로 막으면 된다'는 식으로 형사공탁을 악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제도의 도입 취지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