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보티첼리는 美의 창조자이자 고독한 스토리텔러

[arte] 신지혜의 영화와 영감

영화
# 1 그는 보티첼리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우리는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림 한두 점 정도는 떠올릴 수 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며 피렌체의 황금기를 대변하는 화가이다. <비너스의 탄생>, <봄> 등 보티첼리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고 간결하고 부드러운 붓 터치와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감, 우아하고 묘한 매력을 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과 표정은 관람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이 정도가 과연 그를 혹은 그의 작품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일까?

영화 <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보티첼리와 그의 작품들을 심도 있게 조명하면서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다층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보티첼리 &lt;봄&gt; (영화 &lt;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gt;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영화공간
# 2 보티첼리는 스토리텔러이다

보티첼리는 늘 이런 고민을 했다.
문맹자가 많던 때, 그들에게 효과적이고 즉각적으로 그리고 다수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림이었다. 특히 성서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보여주면 고가의 책을 구입할 수도 글을 읽을 수도 없었던 대다수의 대중들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림과 그림에 담긴 내용의 아우라 덕분에 신앙심을 고취 시킬 수 있었다.

이후 사진이나 영화 또한 이런 역할을 이어받게 되었고 실제로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은 어마어마한 국토에 퍼져 있는, 대다수가 문맹자인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혁명을 선전하고 알릴 수 있는 수단으로 영화를 이용하지 않았던가.사진 또한 이런 역할을 벗어버릴 수 없다. 독수리의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의 겁에 질린 모습, 네이팜탄 때문에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진 어린 소녀의 모습 등 사진 한 장이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그림, 사진, 영화 등은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다층적인 감상과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된다. 보티첼리는 이렇게 그림 한 장이 가질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기법과 어떤 색감과 어떤 구도를 이용해야 할지 영민하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 속에 누구를 어떻게 등장시켜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보티첼리 &lt;동방박사의 경배&gt; (1475-1476),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 성당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보라. 당대 실권력자인 메디치가의 아들들의 얼굴이 들어 있으며 그 권력의 정점을 찍은 로렌초는 물론이고 화가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어 – 더구나 보티첼리의 시선은 관람객을 향해 있다 –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이 아니라 시대의 권력과 그 권력을 대변했던 화가 자신의 위치와 명성, 관람객을 바라보는 시선 처리로 한 시대를 목도하고 지근거리에 있던 자기 자신을 명기해 놓고 있다.보티첼리는 <성 암브리지오 제단화>에도 역시 로렌초, 줄리아노 형제와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어 성화 속 이야기에 당대의 실존 인물들을 첨가함으로써 당대의 권력가가 누구인지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양미술은 기독교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진 종교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신자들에게 그림으로 보여서 성서의 내용을 알리고 신앙심을 심어줘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성화 속에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는 것은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예술을 주도해 나가는지 누가 도시의 패권을 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성화 속 이야기에 함께 들어가 있는 인물이라니. 그것은 단순히 그림 속에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놓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서 속 사건에 함께 했던 인물이라는 아우라를 심어주는 것이며 그것은 곧바로 권력과 패권을 상징하는 것이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영화 &lt;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gt;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영화공간
# 3 보티첼리는 파이오니어이다

보티첼리는 이처럼 대단한 스토리텔러였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스메랄다 반디넬리의 초상>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꽤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여인의 초상화는 이전의 것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의 그림 속 여인들은 당대의 포즈를 벗어나 3/4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이 작품 속 여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초상화 속 여인들의 시선은 늘 정면에서 돌려져 있었고 얼굴을 정면 가까운 각도로 잡는다 해도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보티첼리의 ‘시선’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시대의 관습이나 관습의 토대가 되는 집단적 의식 혹은 정신을 바꾸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보티첼리는 그림 속 여인의 시선을 정면으로 당당하게 틀어 놓음으로써 집단적 사고의 흐름을 틀어버린 선구자가 되었다.

이 또한 보티첼리가 예술이 갖는 힘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고 예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예술이 동시대의 집단적 의식을 서서히 끌고 갈 수 있음을, 각도를 돌려놓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로 보티첼리의 시대는 예술과 권력의 사이가 무척 가까운 시대이지 않았는가. 권력가들은 앞다투어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불멸하도록 만들었고 서로의 관계 강화를 위해 빼어난 예술가들을 보내주기도 했으니.

이런 관계와 패권 속에서 보티첼리의 화풍과 소재가 조금씩 바뀌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이야기의 소재와 흐름을 영리한 구도와 배치를 통해 구현할 줄 알았고 그림 한 장이 가지는 다층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천재 예술가였다

# 4 보티첼리는 인플루언서이다

사실 보티첼리의 작품들은 이후에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 유명한 <봄>도 오래도록 수장고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작품들을 지금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굉장한 일일 수 있다.

당대 크나큰 명성을 누렸던 보티첼리였지만 말년은 허무하고 쓸쓸했고 그의 작품들은 곧 잊혀졌다. 그런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라파엘로 전파’ 덕분인데 19세기 들어서 다시 ‘발견’된 보티첼리의 그림들은 이후 엄청나게 재해석되고 인용되면서 각광을 받기에 이른다.
영화 &lt;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gt;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영화공간
그의 작품이 재해석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처럼 어떤 유행이나 트렌드도 시간과 함께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문화콘텐츠에 대한 재해석과 시대적 변화가 담겨 있고 나아가 새로운 흐름과 방향을 창출한다.

보티첼리의 작품들은 그의 시대에도 단순하지 않았으며 지금 또한 그러하다. 그저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 한 장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살펴볼수록 다양한 이야기층이 숨어 있고 많은 시도와 의도가 들어 있는 거대한 콘텐츠인 것이다.

# 5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

문화콘텐츠에는 많은 것이 실린다. 그것은 결국 어떤 이야기로 귀결될 것이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장르가 다르지만 핵심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예술가들은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에 귀를 기울인다면 오랜 시간을 거슬러 분명 무언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lt;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gt; 포스터 ©네이버 영화
영화 <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는 아주 잘 짜여진 구성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보티첼리의 생애와 작품을 훑는 것이 아니라 보티첼리가 남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층의 의미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서양미술사에서 어떤 족적은 남겼는지 그리고 그의 작품들이 현대에 와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으며 어떤 시각을 잡아낼 수 있는지 탄탄한 흐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 편의 그림이 사진이 영화가 가지는 다층적 의미는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보고와도 같고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 깊은 유대와 집단적 상상력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보티첼리의 작품을 새로운 마음으로 더욱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를 영화는 설명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 구도와 인물들의 배치, 시선, 신화적 요소와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며 예술가들의 레퍼런스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보티첼리의 재능이며 이것이 보티첼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이다.지금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

신지혜 칼럼니스트·멜팅포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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