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둥그런 식탁, 심포지엄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둥그렇게 둘러앉는다. 인사하고, 건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는다. 시야가 탁 트여 모두를 마주 볼 수 있다. 자칫 소외될 가장자리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적인 사각 식탁과 달리 편안하고 정겹다. 테이블이 회전까지 한다면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맛보는 덤이 따라온다.

며칠 전 중국 산둥성과 웨이하이시의 파견 공무원들, 그리고 우리나라에 진출한 중국 기업인들과 만찬을 가졌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직원들까지 20명에 가까운 규모였는데, 말이 더듬거려도 웃음꽃은 만발했다. 친해지는 데는 ‘즐거운’ 저녁 식사 이상이 없다.직장에서 회식은 당연한 일과였다. 사람이 바뀌어도 모임은 이어졌다. 업무 얘기가 주였지만, 넥타이 풀고 상사나 동료 흉도 보곤 했다. 힘든 프로젝트가 끝나면 단합 회식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전통적’인 회식이 많이 줄었다. 퇴근하고 한잔하자는 ‘번개’ 제안은 구시대의 유물에 가깝다. 꼭 미리 공지해야 하는데, 선약이 있거나 내키지 않으면 불참해도 그만이다. 무조건 상사를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미 희미하다. 음주 없는 회식이 어색하지 않고, 이른바 ‘1차’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일하면서 친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과 후 식사나 동아리에서 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진 사람이 훨씬 많다. 사무실보다 조금은 더 편한 공간에서 의기투합하며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민망하지 않으려고 미리 몇 명 섭외해 두고서야 번개를 제안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아주 오래, 스스로 즐겨왔다고 고백한다. 때론 그 시절이 그립다. 아무 때나 치는 번개 말고, 아무 때나 만나도 반갑고 고맙던 사람들.

사회 발전에 따라 규율과 규칙은 변한다. 문화와 관행도 바뀐다. 회식도 예외가 아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대되고,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는 모임 자체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공공과 민간 모두 마찬가지다. 옳고 그름이 있을까. 좋은 쪽으로 맞추면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거기 집중하면 그뿐이다. 라틴어 ‘심포지엄’은 ‘함께 술 마시기’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올림포스의 그늘 아래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에서 서양 철학의 원류는 형성됐고, 데모크라시의 꿈이 잉태됐다. 원활한 소통의 기반이자 각자의 사유를 종합하는 장으로서 회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다.

가능하면 둥근 테이블에서 만나자. 선배들은 말을 줄이고 귀를 열자. 기억과 달리 다들 어릴 때 어른들을 싫어했다. 술은 원하는 사람, 좋아하는 만큼만,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으면 된다.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단체 회식이 싫은 MZ세대와 눈치 보며 ‘번개’치는 소심한 상사들이 만나야만 소통이 일어난다. 오늘 저녁, 한잔 어떠신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