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자이너도, 작가도 아니다… 그저 수집에 미친 경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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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개인전 연 김영나"저는 경계인입니다. 디자이너와 작가 사이 그 어딘가를 유영하죠. 디자인과 미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계속 경계인으로 도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디자이너와 작가,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계속 중간 어딘가에서 도전하는 인간 되고파"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허문 작가'로 불리는 김영나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산업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디자인을 전시장 안으로 들고 들어온 작가다. 스티커, 포스터 등 디자인 작업을 미술관과 갤러리 벽에 걸었다. 디자인을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도전을 해 온 김영나가 자신의 새로운 작업물들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지난 8일부터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개인전 'Easy Heavy'에서다. 김영나의 작품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디자이너와 미술이라는 독립된 영역을 부순 선구자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김영나는 "과거에나 먹혔을 이야기"라며 웃었다. 그는 "이제는 미술에도 디자인 언어를 쓰는 작가들이 많아졌고, 전시를 여는 디자이너도 많아졌다"며 "어느 곳에 속하기보다는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새 작품을 만들고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나는 전시장을 100% 이상으로 활용한다.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국제갤러리 부산 전시장 벽에도 형광색 페인트로 긴 선을 그었다. 전시를 위해 만든 가벽뿐만 아니라 건물 기둥에도 모두 형광 노랑색 선을 두른 것.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깔끔하고 밝은 국제갤러리 부산 공간에 어떤 균열을 내고 싶었다"는 그는 "어떤 시도를 할까 하다가 문 앞 구조물에 기둥이 있는 걸 발견했고, 그 기둥을 기준으로 수평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김영나는 부산 국제갤러리 공간과 처음 맞닥뜨렸을 떄의 느낌을 뚜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바깥 공간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건축과 구조물, 바깥의 공용 공간까지 다 할애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장 구조를 바꿔놨다. 중간에 큰 가벽을 세웠다. 김영나는 이에 대해 "정해진 구획 안에서 전시를 하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며 "이번 전시에서도 공간을 나누며 최근작과 기존 작업을 완벽히 분리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작가 김영나와 마치 세트처럼 함께 따라다니는 작업이 바로 'SET'아다. SET는 그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작업한 25가지 시리즈의 이미지를 모아놓은 책이다. 그는 종이 위 이미지를 책 밖으로 끄집어냈다. 회화로, 설치작으로 옮겨 전시장에 데려다 놓았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책 'SET'를 두고 김영나는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는 주머니 같다"고 말했다.
김영나는 2020년 작업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전시 '물체주머니'를 열며 작업을 대하는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그는 "당시 성공했던 SET의 버전2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며 "그 때 책 속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구현해보게 됐는데, 그 과정을 통해 단순히 내 작품을 보여주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첫 공간에도 그는 SET에서부터 구현한 설치 작업들을 걸었다.이번 전시는 2016년부터 국제갤러리와 인연을 맺은 김영나가 9년 만에 처음으로 여는 개인전다. 지금까지 전시 이외에 다른 작업을 해 온 특이한 관계였기 떄문이다. 그는 2016년 단체전에서 국제갤러리와 처음 만났다. 김영나는 "그 때 거대한 벽화 작업과 전시 포스터, 배너까지 모두 내가 디자인했다"며 "작가와 디자이너로서의 일을 한 번에 했던 경험이었는데, 지금까지 한 활동 중에 가장 재밌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역할을 하며 보다 다각도로 전시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 이후 그는 국제갤러리의 내부 프로젝트에도 함께했다. 공간도 면밀히 보게 됐고, 그렇게 다른 깊이로 인연 맺으며 이런저런 내부 프로잭트 좀 하고. 공간구획 카페 등등 모두 내가 작업. 호텔 스위트룸 작업도 국제 통해서 작업하는 등. 이 전시 전에 여러 프로젝트 계속 함께 했다. 내 작업방식과 국제가 잘 맞아. 단순 페인팅보다 외부 커미션 같이 하는 것. 작년 터닝포인트 겪으면서 전시 얘기가 나와서 하게 됐다.그는 '수집을 갈망하는 작가'다. 스티커에서부터 종이 껍데기까지 무엇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실제 그의 베를린 작업실에는 누군가에겐 쓰레기가 되었을 물건들이 깔끔히 정돈되어 있다. 김영나는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수집을 하며 살아온다"고 말했다. 동일한 시간대에 비슷한 풍경사진을 찍거나, 비슷한 장소를 반복해 찾는 것도 모두 수집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수집이라는 작은 행위를 면밀히 살피고 관찰하는 유별난 사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수집에 대한 생각을 뒤집었다. 김영나는 "모으는 데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걸 써서 없애보자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며 "스티커들을 다른 재료로 표현하는 작업을 구상해 작년부터 이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작은 스티커를 확대해서 거울, 실 등 다른 재료로 바꿨다. 이번 전시에도 스티커로 만든 작업물을 한데 모아놨다. 대부분 스티커 원본이 존재하고, 그것을 10배에서 30배까지 확대한 작품이다.이번 전시의 제목은 Easy, Heavy. 쉽다는 의미 외에도 가볍다는 뜻을 가진 단어 'Easy'와 무겁다라는 의미의 'Heavy' 라는 단어를 결합했다. 그는 이번 전시엔 "가벼운 개체들과 무거운 의미들이 붙어 있다"고 얘기했다. 이어 "스티커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가벼운 기념품이 크고 무거운 기념비가 되어 벽에 걸려있을 떄 여전히 가볍게 느껴지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김영나는 앞으로도 궁금하고 낯선 작업을 할 것이라는 계획을 말했다. 그는 "익숙한 것들을 계속 해나가는 것도 즐겁지만, 낯선 것을 하기 위해 매사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너가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며 "주변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걸 도전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부산=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