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억' 쏟아부은 경기도 관광테마골목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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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보산, 손님 없이 '텅텅'경기도가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92억3000만원을 투입해 벌인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육성사업’이 가시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원금을 투입한 골목의 관광 수요가 늘지 않아 체감되는 게 없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경기도가 2020년부터 매년 벌인 사업이지만, 성과를 평가하는 체계도 없어 혈세가 낭비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동두천, 캠프보산 가보니 '파리만 날려'
지난 13일 정오께 경기 동두천시 ‘캠프보산 스트리트’에는 미군기지 축소 이전의 여파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300m 가량의 상점가엔 미군 두명을 제외하곤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상점들은 '10개 중 7~8개'가 폐업했거나 문이 굳게 닫혀있는 상태였다. 몇몇 상점 앞에는 오래된 고지서만이 있을 뿐이었다. 30년간 옷가게를 운영했다는 조 모씨(68)는 “관광지라 하기엔 너무 허접하다”며 “하루에 1~2명도 안 와서 앉아서 시간만 때우다 간다”고 푸념했다.캠프보산 스트리트는 지난해 경기도의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육성사업’ 대상지다. 경기도는 매년 6~7곳 씩의 골목을 선정해 브랜딩, 여행상품 마련, 꾸미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색 있는 골목을 매력적인 관광 명소로 육성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단 취지다. 선정된 골목에는 1억원 안팎의 사업비가 지원된다. 예산은 경기도가 지급하고 골목 선정과 프로젝트 진행은 경기관광공사가 맡는다. 캠프보산 스트리트 상인들에게 지원 받은 사실을 아는지 물었지만 대부분 '모른다'고 답했고, '뭔갈 하긴 한 것 같은데 체감되는 건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다른 사업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2년 사업지인 고양 높빛고을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 모씨(31)는 “여긴 별 볼거리도 없고 대중교통도 부족해 외지인들은 잘 안 온다”며 “경기도가 지원해줬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골목당 1억원씩 '효과 미미' 선택과 집중 필요
작은 예산을 여러 곳에 쪼개서 지급해 유의미한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선정된 골목들이 지급받은 예산은 대부분 벽화 그리기, 포토존 조성, 골목 해설 소품 제작 등에 쓰였다.캠프보산 스트리트의 경우 지급받은 1억원 중 절반 이상이 공연·전시 복합시설 ‘두드림뮤직센터’ 리모델링에 쓰였다. 관광 수요와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이날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두드림뮤직센터를 지켜보니 손님이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윤충식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회 위원은 “단순히 골목을 예쁘게 꾸며 놓는 수준으로는 외지인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며 “사업 효과를 보려면 1억원씩 6곳에 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금액을 집중적으로 지원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수의 잠재력이 높은 골목을 선정해 집중 투자하고, 그 효과가 퍼져나가게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해당 사업은 경기관광공사가 맡는다. 4년 동안 25개 골목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 공사는 25억원을 골목 지원에, 67억원을 홍보 등 기타 사업에 썼다. 그러나 여전히 인스타그램 페이지 등 공식 홍보 채널도 미미한 실정이다.
공사는 블로거들을 골목에 초대해 시범투어를 운영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홍보를 진행해 왔다. 신학승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관광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게 모객”이라며 “관광 콘텐츠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홍보가 되지 않으면 수요가 생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기관광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별도의 절차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육성사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체계적인 성과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인재 재정성과연구원장은 “매년 국민 혈세를 투입하고 있는 만큼, 투자 대비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성공요인과 실패요인을 파악해 다음 해 사업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경기관광공사는 캠프 보산 스트리트의 경우 시 자체 예산을 반영해 인생네컷 스튜디오 등을 준비하고 있고, 고양 높빛고을길은 외부 여행사와 관광상품 위탁판매 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수원 행리단길 등 성공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