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정상에 섰던 한국 영화, 벌써 내리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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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 국제영화제가 14일 개막했다. 세계 영화인의 시선이 프랑스 남부 도시 칸에 몰려 있지만 한국 영화 팬의 마음은 편하지 못하다. 경쟁 부문 후보가 아예 없는 데다 전체 초청작도 3편에 그치면서다. 작년과 2022년에 ‘K무비’가 칸 무대를 종횡무진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5년 전 '기생충'으로 최고의 해
작년·올해는 경쟁 부문 진출 '0'
올해는 비경쟁 부문 초청도 3편
"칸에 일희일비할 필요없지만
한국 영화 생태계 점검할 필요"
황정민·정해인 레드카펫 선다
올해 칸 영화제에는 황금종려상과 감독상, 심사위원대상, 배우상 등을 놓고 22편이 경쟁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비경쟁 부문에서만 ‘베테랑2’ ‘영화 청년, 동호’ 등이 소개된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대중성과 상업성 중심의 작품을 소개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한국 영화의 산증인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는 클래식 부문에서 만난다.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는 임유리 감독의 단편 영화 ‘메아리’는 단편 부문(라 시네프)에 초청됐다. 라 시네프에는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우수한 단편 영화가 모인다.
전도유망한 신예 감독의 작품이 소개되고 ‘베테랑2’ 주연인 황정민과 정해인 배우가 생애 처음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영화계 안팎에선 아쉽다는 목소리가 크다.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처음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후 한국 영화는 경쟁 부문에 19편을 올렸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2019년을 기점으로 한국 영화의 활약은 더 두드러졌다. 2022년엔 경쟁 부문 초청작 22편 가운데 한국 영화가 두 편(‘헤어질 결심’ ‘브로커’)이었고, 송강호 배우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는 비록 경쟁 부문 초청작이 없었지만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이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홍상수 감독의 ‘우리의 하루’가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일곱 편에 이르는 한국 작품이 칸으로 출격했다.
1000만 영화 늘어나지만…
경쟁 부문 초청작이 없다고 해서 한국 영화 수준이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봉 감독의 ‘미키17’이 예정대로 올해 3월 개봉했다면 어렵지 않게 칸 무대를 밟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서울의 봄’ ‘파묘’ 등이 국내에서 1000만 명 고지에 오르는 등 성과도 괜찮았다.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위축된 영화 생태계가 결국 칸 영화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많다. 영화계 관계자는 “작품성이 중요한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입지가 좁아졌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한 상업영화가 주로 제작되다 보니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나오기 힘든 환경이 됐다는 얘기다.영화 ‘범죄도시 4’가 스크린을 장악하자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영화 단체들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한두 편만 살아남고 다 죽는 판”이라고 성토했다. 임 감독은 “푸드트럭에서 부담 없이 여러 메뉴를 사 먹을 수 있듯이 더 다양한 영화가 극장에 진열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캉탱 뒤피외 감독의 ‘더 세컨드 액트’를 개막작으로 12일간 열린다. 1970년대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거머쥔 미국의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신작 ‘메갈로폴리스’로 귀환했고, 이란 감독 알리 압바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그려 주목받은 ‘어프렌티스’ 등이 눈길을 끌고 있다.
유승목 기자 moki91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