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반포 사업장으로 본 PF '옥석 가리기' 환상

우량해도 '일단 매각' 위기
정상화엔 자금 유인책 절실

류병화 증권부 기자
“반포 사업장은 상위 10%죠. 그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태영건설이 시공을 맡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사업장이 경·공매에 들어간다는 소식에 대해 한 증권사 소속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금융당국이 ‘옥석 가리기’라는 표현을 통해 부동산 PF 구조조정을 하고 있지만 정말 옥석만 살아남고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만 경·공매로 넘어가는지 의구심이 나온다는 취지다.반포 사업장은 선순위 지위를 가진 과학기술인공제회(과기공)가 최근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경·공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곳이다. 과기공의 선택에 시장 전문가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 사업장은 우리나라의 최대 ‘노른자위’로 꼽히는 반포동에 있는 데다 이미 본 PF 궤도에 올라 착공을 시작했다. 땅만 사두고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브리지론 단계의 사업장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황에 따라 할인 분양까지 하더라도 완판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다.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은 사업장이지만 과기공이 경·공매로 넘긴 것은 이른바 ‘뉴 머니’를 조달할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금의 위험이라도 감수해가며 부족 자금을 대려는 기관이 없다는 얘기다. 기존 대출 기관인 과기공이나 KB증권 모두 쉽사리 중순위로 추가 대출을 집행하지 못한다. 100% 안전한 PF 대출이 아니면 자금 집행을 꺼린다. 게다가 과기공은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이 여러 공제회에 대한 대체투자 감사에 한창이다. 행여 추가 자금 투입을 해야 하거나 조금이라도 대출금을 떼일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반포 사업장과 같은 우량 사업장까지 대출금이 회수되는 과잉 구조조정이 벌어진다. 이는 수많은 협력 업체와 하도급 업체의 부실로 이어진다. 반포 사업장은 멈췄고 여기에 딸린 협력 업체와 하도급 업체들은 수십억원의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살릴 사업장은 살리는 방식으로 옥석이 가려지려면 신규 자금 공급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전날 내놓은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엔 신규 자금으로 최대 5조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23조원 안팎의 PF 대출이 부실화될 수 있는데 5조원으로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부실 자산을 정리해야 하는 마당에 당분간 금융회사들이 신규 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다. 부족한 자금 공급 유인책이 새로 나와야 구조조정 작업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다. 금융사들이 우량 PF까지 덮어놓고 외면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부동산 대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