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 놓고 '치열한 싸움'…연금개혁 주역들의 '동상이몽 2년'

DEEP INSIGHT

'정치권-학자-복지부' 핑퐁게임
개혁은 어떻게 좌초됐나

국정과제로 의욕 넘치게 출발
국회 주도로 구조개혁 원했던 尹
"임기 내 개혁안 완성" 강조했지만
합의 힘들자 "22대 국회로 넘기자"
21대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조급하게 하지 말고 22대 국회로 넘겨서 더 충실하게 논의하자”고 말하면서 논의의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연금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대선 공약인 대통령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는 대신 국회로 공을 넘겼다. 같은 해 10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두 차례 기한을 연장하며 지금까지 활동해왔지만 개혁은 난망하다. 논의 주체인 정치인과 학자, 주무부처 공무원들이 연금개혁의 방향, 속도, 우선순위에서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연금개혁 논의를 이끌어온 주요 인물과 그들의 ‘동상이몽’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집권자의 의중은 무엇인가

윤 대통령의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은 취임 이후 바뀐 게 없다. 일관되게 “임기 내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말해왔다. 2022년 12월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연금개혁은 한번 결정하면 30~50년 가야 하는 과제”라며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수십 년간 지속할 수 있는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올 수 있도록 시동을 걸겠다”고 말했다. 9일 기자회견에서도 “임기 안에 연금 개혁안을 확정하겠다”는 의지만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기본적으로 ‘오래 걸리는 과제’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선진국이 10~20년에 걸쳐 연금개혁에 성공했듯 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개혁의 단초만 마련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엔 안상훈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신인 안 전 수석은 대선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현 정부 복지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스웨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 연금 제도는 모수개혁보다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모수(parameter) 개혁이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등 수치를 조정해 적립 기금의 소진을 늦추는 것이라면, 구조개혁은 보험료를 걷고 연금을 나눠주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을 의미한다.안 전 수석은 또 “연금개혁을 정부가 강행하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믿고 있다. “국회와 사회가 오랜 기간 공론화를 거쳐 합의안을 수렴해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정부 주도 연금개혁에 반대한다. 윤 대통령이 처음부터 연금개혁 주도권을 국회로 넘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애초 연금개혁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대선 당시 연금개혁을 최우선 아젠다로 내세운 사람은 윤 대통령이 아니라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였다. 여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겐 연금개혁이 자신의 과제라는 인식이 덜 하기 때문에 특유의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모수개혁이냐 구조개혁이냐

윤 대통령의 철학 때문이든 의지의 문제든 연금개혁은 국회에 맡겨졌다. 2022년 7월 여야 합의대로 국회는 연금특위를 개설하고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를 꾸렸다. 민간자문위를 이끈 김용하·김연명 두 공동위원장은 한국 연금개혁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학자들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재정 안정론,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노후 소득 보장을 중시하는 소득보장 강화론을 대표한다. 이번에도 물밑에서 협상에 깊숙이 관여했다.두 사람은 입장이 다르지만 한 가지에선 생각이 일치한다. ‘우선 모수개혁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개혁은 장기간 논의가 필요한 만큼 일단 모수를 조정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주호영 연금특위 위원장과 함께 ‘이번 특위 임기 내에 개혁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이해관계도 공유한다.

민간자문위는 2023년 1월 말까지 모수개혁 초안을 내놓겠다는 목표로 2022년 11월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보험료율 15%, 소득대체율 40%)과 ‘더 내고 더 받는 안’(보험료율 15%, 소득대체율 50%)이 유력하게 논의됐다. 하지만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여야 특위 간사들이 자문위에 ‘모수개혁 논의를 중단하라’고 주문한다. “국회는 구조개혁에 매진하기로 했고, 모수개혁은 정부 몫”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총선을 1년여 앞두고 국회가 국민연금 개혁을 정부에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수개혁을 넘겨받은 보건복지부도 뚜렷한 개혁안을 내놓지 않았다. 작년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뺀 채 24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대통령실이 총선을 앞두고 ‘수치 논쟁을 벌이지 말라’고 주문했다는 얘기도 들렸다.이대로면 개혁이 물 건너가겠다고 판단한 두 민간자문위원장은 작년 11월 자문위가 논의해온 모수개혁안 두 가지를 최종 보고서에 담아 발표해 버린다. 김연명 위원장은 “구조개혁은 워낙 큰 사안이라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시급한 모수개혁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소득대체율 44% vs 45% 공방

연금개혁의 물줄기는 다시 모수개혁으로 바뀌었다. 구조개혁 논의는 사라진 채 특위는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치를 공론화에 부쳤다.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대표단은 설문조사에서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하는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는 안’을 선택했다.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연금특위 여야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안을 바탕으로 협상에 들어갔다. 김 의원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를 제안했다. 그는 “여당이 받을 수 있게 소득대체율 수치를 낮췄다”고 했다. 유 의원은 당초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를 꺼냈다가 협상 과정에서 ‘소득대체율 44%’까지 물러났다. 김 의원은 소득대체율 45%를 고수하고 있다. 김 의원 뒤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이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유 의원은 애초부터 ‘신구연금 분리’ ‘기초연금과 통합’ 등 구조개혁을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안이다.

유 의원과 김 의원은 22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 성남분당갑에서 생환한 안철수 의원이 최근 연금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확정급여(DB) 방식에 자동안전화 장치를 도입한 핀란드식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낸 만큼 돌려받는 스웨덴식 확정기여(DC)형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게 안 의원의 입장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이 주장해온 안이다. 역시 구조개혁론자인 안 전 수석도 비례대표로 22대 국회에 입성한다.22대 국회에서 모수개혁의 불씨가 되살아날지,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구조개혁안을 마련할지는 누가 논의를 이끌어가는지 그리고 윤 대통령의 진짜 의중은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