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에…첨단산업 허브로 뜬 '사우스 6'

동남아, 글로벌 첨단기지로 급부상

말레이, 외국인 직접투자 2년새 6배
엔비디아, 베트남을 '제2 고향'으로
< 말레이 성장의 상징…세계 2위 마천루 ‘메르데카118’ > 말레이시아가 ‘동남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금액이 2년 새 6배로 늘면서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의 ‘스카이 라인’도 매년 달라지고 있다. 올해 1월 완공된 메르데카118 빌딩은 세계에서 두 번째(679m)로 높은 마천루다. /AFP연합뉴스
말레이시아 북서부의 휴양섬인 페낭주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자랑할 거리가 에메랄드빛 바다와 고급 리조트가 전부였다. 수백 년 전 동서양을 잇는 향신료 교역의 요충지던 페낭은 첨단산업이 즐비한 ‘테크 아일랜드’로 변신 중이다. 공항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려 바얀 레파스 산업단지에 도착하자 수십 대의 타워크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대만 TSMC에 이어 세계 2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으로 도약 중인 인텔은 이곳에 70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들여 3차원(3D) 첨단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차로 3분 떨어진 독일 인피니언 공사 현장에서도 덤프트럭과 수백 명의 인부가 바쁘게 오갔다. 인피니언은 페낭에 세계 최대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지난 7일 페낭에서 만난 다토 스리 윙 말레이시아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은 “1972년 인텔이 말레이시아에 조립공장을 지은 이후 약 50년 만에 투자 부흥기가 찾아왔다”며 “해외 첨단 기업의 입주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694억달러로 2년 전보다 6배 가까이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5일 KOTRA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등 ‘사우스 6’로 불리는 동남아시아 주요국의 지난해 FDI 총액은 3945억달러로 2020년 1123억달러에서 무려 251.3% 급증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중국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자 사우스 6가 반사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지난해 FDI는 330억달러로 2022년(1802억달러) 대비 82% 감소했다. 30년 만의 최저치다.저임금 단순노동에 집중된 과거와 달리 사우스 6에 첨단산업이 몰리면서 한국 산업 생태계에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베트남만 해도 삼성전자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말 “인재가 많은 베트남을 엔비디아의 제2 고향으로 만들겠다”며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배터리 핵심 광물을 보유한 인도네시아는 해외 기업이 자국 내에 배터리 부품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고 있다.

페낭=김우섭/황정수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