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싹쓸이' 경고 쏟아졌는데…의외의 전력난 해결사 '반전'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전기먹는 하마'가 전력난 해결사…AI의 마법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전기와 그리드(grid)의 세계-하
각종 첨단기술이 현실화되는 21세기에 세계 주요국이 전력난을 우려하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열풍 때문이다. 생성형 AI를 사용해 작업 한 번을 요청할 때 소모되는 전력은 일반 검색엔진 사용 시보다 10배 가량 많다. 이런 가운데 AI가 몰고 온 전기난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로 AI가 활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가속화하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가 전기 해결사

마이크로소프트는 15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 지속 가능성 보고서에서 "전력 집약적인 AI 붐으로 인해 탄소 배출량이 2020년 대비 30%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AI와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이 실행되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면서 전기 소비량이 급증하고,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도 덩달아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칩 설계 회사 Arm은 "에너지 절감 방안을 찾지 못하면 현재 미국 전력의 4%를 소비하고 있는 AI 데이터센터가 2030년이면 25%까지 싹쓸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급난이 예상되는 전력을 효율화하기 위해 최근 동원되고 있는 기술도 AI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순적이게도 (에너지 집약적인) AI를 활용하는 것이 에너지 절약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AI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증가시킬 것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급증을 상쇄할 수 있는 해답도 될 수 있다"고 전했다. AI를 통해 주거용, 상업용 등 건물의 전기 소비량을 절약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AP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피터 허벡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에너지 컨퍼런스에서 "AI가 향후 4년간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최대 25%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건물들에 배치된 스마트 기기와 계량기 등이 입주자 수부터 난방 사용량, 엘리베이터 작동 방식 등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생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최신 AI가 해당 데이터를 분석하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거나 향후 유지보수 필요성을 예측하는 등 건물의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을 설정할 수 있다.

WSJ는 "최근 AI 열풍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폭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발전소 운영사나 전력 기기 주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ABB 지멘스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과 같이 AI를 활용한 에너지 효율 시스템 관련 기업의 주식도 매수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력난 대비 나선 미국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대응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최근 13년 만에 전력망 규칙을 개정했다. FERC는 “전력망 확장 속도가 더딘 가장 큰 이유는 사업자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발전 프로젝트 개발업체가 기존 전력망에 연결을 요청하거나 전력망의 안정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땜질식 처방’을 반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새 규칙은 전력망 운영사가 앞으로 2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원 다변화, 기상이변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전력망 용량이 부족한 지역 등에서 추진하는 필수 프로젝트를 신속하게 허가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전력망 운영사는 신규 전력망의 이점을 평가해 기업, 가정 등 전기 소비처와 발전사가 전력망 확충 비용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방안도 고안해야 한다. 초기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기존 송배전선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은 전류를 전달할 수 있는 초전도케이블 등의 설치를 유도하려는 구상이다.

윌리 필립스 FERC 위원장은 미국이 “(IRA, 반도체법 등에 의한) 제조설비 급증, 데이터센터 확대, 기상이변 등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과부하가 빈번해지는 시기에 들어섰다”고 했다. 이어 “미국 전력망의 신뢰도와 경제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더 빨리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건설 중인 고압 전력선이 충분하지 않아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대처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원에 연결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풍, 산불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정전 위험도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력망 확충은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IRA 도입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미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전력망 확충 속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IRA에 의한 탄소배출량 감축 기대분(입법 효과)의 80% 이상이 손실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산에 멋진 풍차가 있어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친환경 전기를) 실어나를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며 송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