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외교관 1호'서 남북 잇는 '통로 1호'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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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 고영환 신임 국립통일교육원장“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바람길처럼 남북한 국민이 속 터놓고 통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김일성이 칭찬한 '특급' 외교관
망명 후 통일 교육 최전선에
"요즘 2030, 獨 베를린으로 보내
통일 감동 직접 느끼게 하고파"
16일 서울 수유동 통일교육원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70·사진)은 “물리적 통일을 넘어 남북 국민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려면 객관적인 통일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달 초 통일부 산하 통일 교육기관인 통일교육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탈북 외교관 1호’다. 북한 자강도 강계시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그는 1980년대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담당했다. 김일성으로부터 프랑스어 실력을 칭찬받을 정도로 북한에서 ‘특급’ 대우를 받는 외교관이었다.촉망받던 그가 북한을 떠난 건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일하던 1991년 불쑥 던진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루마니아 독재자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급격한 민주화 이후 국민에 의해 처형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 북조선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내뱉은 것.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보위부 직원이 평양에 “김일성도 저렇게 (처형)될 수 있다”고 왜곡해 보고한 게 결정적이었다. 잘못 전달된 말 한마디에 자신을 잡으러 ‘체포조’가 오는 걸 보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그 길로 콩고 인접 국가에서 은신하다가 한국으로 망명했다.
탈북 34년 차를 맞은 고 원장은 30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통일 인식이 옅어진 게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젊은 세대가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는 “20~30년 전만 해도 통일이 ‘지상 과제’로 여겨졌는데, 요즘은 20~30대에게선 ‘왜 통일해야 하나’라는 반응이 많다”며 “70년 넘게 떨어져 있던 남북 주민이 다시 함께 살 수 있을지를 감정적으로 고민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통일 인식을 끌어올리기 위한 새로운 사업도 고민하고 있다. 롤 모델로 삼는 독일의 통일 현장을 보여주기 위한 견학 사업을 고안 중이다. 고 원장은 “매년 공모로 국민 시찰단을 선발해 독일 베를린 같은 역사적 현장에 보내 ‘통일’의 감동을 직접 느끼도록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2014년 경기 연천에 문을 연 뒤 이용률이 저조한 통일 교육 체험관인 한반도통일미래센터도 활성화할 계획이다.그는 “북한 주민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통일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북한에선 ‘동무’라는 말 대신 ‘오빠’ ‘자기’ 같은 ‘남한어’를 사용하면 처벌받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이 시행되는 등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자유·평화통일 같은 구호를 외쳐야 북한 주민들이 통일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 원장은 “요즘 해외에 있는 북한 외교관들이 몰래 인터넷에 접속해 검색하는 이름이 김정은 김여정 김주애 이설주 태영호 그리고 고영환이라고 한다”며 “그만큼 내가 탈북해서 잘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들과 탈북인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종우 기자/사진=최혁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