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옷으로 착각할 판"…'퓨전 한복'에 칼 빼들었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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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인근 '테마·퓨전 한복' 논란에"경복궁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빌려 입는 한복들은 실제 한복 구조와 맞지 않거나 '국적 불명'인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른 전통 한복' 육성 방침 내건 국가유산청
상인들 사이선 의견 분분
지난 7일 최응천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장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날 최 청장은 새로 출범하게 된 국가유산청을 소개하며 "궁궐 일대의 한복 문화를 개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무형문화재이기도 한 한복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고 개선할 시점"이라며 "경복궁 주변 한복점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속치마에 철사 후프를 과도하게 넣어 부풀린 형태, 치마의 '말기(가슴 부분의 띠)' 부분까지 금박 무늬를 넣은 형태, 전통 혼례복에서나 볼법한 허리 뒤로 묶는 옷고름 등의 변형 등이 있는 퓨전 한복은 전통 한복의 고유성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최 청장의 한복 지적에 누리꾼들은 "광화문 지날 때마다 형형색색 한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퓨전한복도 시대 흐름에 따른 새로운 한복의 일종이다", "아무리 개량해도 외국인들이 '한푸(중국 전통 의상)'와 구분 못하면 어쩌냐" 등의 반응을 내놨다. 17일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과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는 상인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께 경복궁 일대에는 관광객들이 한복을 빌려 입은 채 고궁박물관과 경복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특히 경복궁이 생소한 외국인 관람객은 대부분 퓨전 한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한복을 입고 경복궁 앞 수문장 교대식을 관람하던 20대 미국인 관광객 에이미 씨는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큰 궁궐이 있어 놀랐다"며 "한복까지 입으니 시간여행을 한 것 같다"며 고궁 관람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가족과 함께 경복궁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50대 이모 씨는 "거의 10년 만에 경복궁에 온 것 같은데 외국인이 정말 많아 놀랐다"며 "한복이 형형색색으로 화려해 눈길을 끌긴 하지만 전통 한복은 거의 없는 듯하다"며 아쉬워 했다. 이어 "전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만큼 전통 한복을 알리는 업체가 책임감을 가지면 더욱 좋겠다"고 말했다.이날 경복궁역 2, 3번 출구 일대에선 한복 대여 업체 30여개가 좁은 골목에서 바삐 영업을 잇고 있었다. 관광객이 옷을 고르면 외국어에 능숙한 직원이 비용을 계산하고, 매장 한쪽에선 댕기 등 머리매무새를 정리해주는 등 분업 체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비용은 2시간에 1만5000원~3만원가량이었다. 한복의 디자인에 따라 5만~8만원대의 가격도 있었다.
몇몇 업체를 돌아본 결과 일부 상인들은 퓨전 한복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난감해 했다. 한 한복 대여업체 상인 A 씨는 "관광객 한명 한명 전통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으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며 "개량 한복도 한복의 일종인데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건 불편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 B 씨는 "지금 갖고 있는 한복은 전부 처분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메인 한복 대여 골목'에서 '전통 한복 대여'를 앞세운 곳은 두어 곳에 불과했다. 효자동 방향으로 들어가면 전통 한복 대여 업체들이 간간이 보였다. 메인 거리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A' 전통 한복 대여 업체를 운영하는 이진우 씨는 "국가유산청의 한복 개선 작업을 환영한다"며 "갈래 치마나 무지기 치마처럼 전통 한복 의상에서도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복장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최근 들어 내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전통 한복에 더 관심을 갖고 당의 등 전통 한복을 대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도 "문제는 값싼 원단으로 만든 퓨전 한복의 대여료가 더 저렴해 이를 대다수의 외국인 관광객이 착용하고, 이걸 한국의 문화로 인지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전날 국가유산청은 궁 주변의 한복 대여점을 대상으로 '올바른 전통 한복 입기'를 위한 계도 작업을 연내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안으로는 대여 업체가 한복 바꾸는 시점에 맞춰 검증된 복식 제시, 한복 착용자 고궁 무료 관람 조건 재검토, 우수 전통 한복 대여업체를 지원·양성 등의 계획을 제시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