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기업 부담 줄이려면 법적제도 있어야"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 포럼
"책임 면책 할래도 법 근거 필요" 지적

국민연금 "기후변화 위험 관리, 투자기업과의 대화 주제"
대한상의 "기업 공시부담 날로 커져…통합 고려해달라"
한국거래소 "ESG 요소, 밸류업 공시와 연계성 높일 것"
2026년 이후 국내 상장사에 대해 도입이 예정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를 두고 법적 근거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업의 공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면책 조치가 거론되는 가운데 이같은 조치를 위해선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해서다. 한국은 현재 ESG 공시 제정·시행에 대한 제도 근거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법적 근거 마련하지 않으면 안정적 시행 못 해"

17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전날 한국회계기준원이 서울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ESG 공시) 기준 공개초안 포럼에선 ESG 공시의 제도화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행사는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지난달 말 발표한 공개초안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열렸다. 이날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ESG 공시를 시행하려면 제도화 기반이 필요하다"며 "공시 내용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려면 법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배출량 등 ESG 공시에 들어가는 데이터 일부가 추산치가 될 전망인만큼 기업의 책임 면제가 필요한데, 제도적 바탕이 없는 채 면책을 거론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는 "일정 기간 동안 고의에 의한 부실 공시가 아니라면 공시 정보에 대해 면책해주는 조치가 당연히 필요한데, 거래소 규정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라며 "향후 지속가능성 공시와 관련해 분쟁이 발생했을시에도 법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으면 공시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적 정합성 측면에서도 관련법이 필요하다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주요국 중 법정공시를 하지 않은 곳은 중국과 싱가포르 정도"라면서 "싱가포르도 거래소 규정으로 시작해 법 개정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중요한 만큼 국제적 정합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연금 "투자자 입장에선 되도록 이른 시점 도입 필요"

금융감독당국은 일단 기후 사안부터 공시를 적용할 방침이다. 공시 도입 시점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날 투자자 측으로서 토론에 참여한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실장은 "기후 이외에 나머지 주제들도 되도록 이른 시점에 공시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한다"며 "투자자 입장에선 데이터가 빨리 나와야 데이터 활용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2015년부터 투자 대상 자산에 대해 ESG 평가를 하고 있다. 관련 공시 정보가 많을 수록 각 기업의 사업·재무적 리스크 등을 보다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게 이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올 하반기 국민연금과 기업과의 대화 주제 중 하나가 기후변화 관련 위험관리인데, 현재로선 관련 정보가 부족한 편"이라며 "의무공시 시점을 미루기보다는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되 관련 제재를 유예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후 이외 분야 정보에 대해선 차차 논의하자는 의견도 줄을 이었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기후변화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주요 이슈라는 의견 일치가 있는 반면, 출산율과 미세먼지 등 외국에선 관심이 덜하지만 국내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속가능성 관련 현안도 있다"며 "이같은 사안 등에 대해선 추가적으로 논의해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실장은 "일단 기후공시 정착 이후에 기후공시 이외 사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 기업들은 도입이 예정된 기후 공시를 두고도 준비해야할 것이 정말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정상호 한국거래소 상무는 "기후관련이 아닌 주요 주제나 공시지표와 관련해선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형성한 뒤에 의무공시로 전환하는 여부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기업 공시부담 날로 커져…통합 고려해달라"

급증세인 기업들의 공시 관련 부담을 완화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실장은 "기업 입장에선 공시 사항이 너무나 많아져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며 "일부는 통합해서 기업들의 일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기업이 공시를 내는 데에도 비용이 들어간다"며 "정보 생산 비용과 정보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의 이용 정도 등을 함께 고려해 기업의 규모별로 차등을 두는 등 단계적으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상호 한국거래소 상무는 "밸류업 가이던스에 따른 정보 공개와 지속가능성 정보공시 간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밸류업 세미나에서도 제시됐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거래소가 연구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지배구조보고서나 ESG 공시가 결국에는 밸류업 공시로 통합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공시시점 불확실성 해소 필요"

공시 의무화 시점에 대한 의견도 여럿 나왔다. 이날 토론 참석자들은 공시 시점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작년 ESG 공시를 2026년 이후 도입할 것으로 발표했으나 확실한 시점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권미엽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는 "기업들이 체계적으로 ESG 공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공시 의무화 시점을 미리 알려주고 의무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ESG 공시는 기업의 사업·재무상 중요한 것만 공시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만큼 유예 기간을 전제로 한 의무공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김동수 김앤장 ESG연구소장은 "글로벌 동향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2029년엔 국내 기업들에도 ESG 공시가 적용될 것"이라며 "기업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의무공시보다는 선택공시 방식을 택해 기업들의 부담을 단기적으로 경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의 법적 책임을 유예해줄 수 있는 법률상 제도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