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웃음의 대학' 주연 송승환 "예술 통해 인간성 회복"

연극 허가 방해하는 검열관 역할…작가에 동화되며 변해가는 모습 연기
"뛰어난 대본·대사 덕에 관객 호응"…작가 숨겨진 의도 찾는 재미도
"웃음의 대학은 권력의 끝자락에 서서 인간성을 상실한 검열관이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에요. "
연극 '웃음의 대학'에 검열관 역으로 출연한 배우 송승환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작품의 주제를 이같이 말했다.

1996년 일본에서 초연한 '웃음의 대학'은 1996년 일본에서 초연한 뒤 요미우리 연극대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전시 상황이란 이유로 웃음을 선사하는 희극 작품을 없애려는 냉정한 검열관과 웃음에 사활을 건 극단의 작가가 7일간 대립하는 내용의 2인극이다. 국내에서는 연극열전이 2008년 처음 작품을 선보인 뒤 2016년까지 총 3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작품에서 검열관은 공연을 허가하지 않기 위해 작가에게 끊임없이 대본 수정을 요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수정된 대본이 오히려 더 재밌어지면서 검열관은 조금씩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나중에는 작가보다 더 열정적으로 대본 수정에 몰입하면서 엉뚱한 웃음을 유발한다.
냉혹하기 작가를 몰아붙이면서도 대사가 구축한 상황만으로 관객의 웃음을 유도해야 하는 역할이기에 많은 배우가 배역을 맡기를 주저하는 역할이다.

1965년 데뷔해 '에쿠우스', '더 드레서' 등의 대표작을 남긴 베테랑 배우 송승환에게도 검열관 역할은 부담스러운 도전이었다.

특히 공연을 무산시키려는 공권력의 편에 서 있으면서도 서서히 작가에게 동화돼 종국에는 누구보다도 연극의 성공에 집착하는 입체적인 연기가 까다로웠다고 한다. 송승환은 "제도권에 서서 인간성을 상실한 검열관이 작가가 교류하면서 연극을 사랑하게 되고 인간성 회복하는 과정을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집중력이 크게 필요한 인물이라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즐기면서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검열관은 기존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변화무쌍한 역할이라서 참조할만한 연기도 없이 캐릭터를 완성해야 했었다고 한다.

송승환은 "일본에서 웃음의 대학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데 참조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면서 "그래서 대사가 가지고 있는 느낌에만 충실하게 연기를 하다 보니 다행히 검열관에 딱 맞는 캐릭터가 생기더라"고 말했다.
현재 4급 시각장애인인 송승환에게 새로운 연극 도전은 더 고역이었다.

송승환은 2018년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이 급속히 나빠졌다.

30㎝ 앞만 볼 수 있고, 그것을 넘어서면 안개가 가득 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은 병의 진행이 멈춘 상태다.

대본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송승환은 대본을 말로 들으면서 외우고 있다고 한다.

송승환은 "대본을 들으면서 외우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읽으면서 암기할 때보다 외우는 속도가 빨라졌다"며 "상대방의 표정이 정말 궁금할 때는 리허설 때 가까이 가서 표정을 보고 기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2인극인 이번 작품에선 쉴 새 없이 빠른 템포로 대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청각에만 의존해 대본을 암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는 "연극 허가를 안 내주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핑곗거리를 제시해야 하는 역할이라서 대사 순서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결국은 죽어라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막 사이마다 암전이 되는 연극의 특성상 시력이 좋지 않은 송승환에게는 무대 이동마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송승환은 표상아 연출과 협의해 공연 내내 한 차례를 제외하곤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대기하는 것으로 동선을 변경했다고 한다.

송승환은 "1시간 30여분 동안 거의 퇴장하지 않고 무대에서 대기하며 긴장감을 길게 가지고 가야 해 쉽지 않았다"면서 "대신 캐릭터 몰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서 배우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송승환은 일본의 대표적인 극작가 미타니 고키의 뛰어난 대본과 이를 완벽하게 우리 무대에서 재현한 제작진의 연출 덕택에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송승환은 "원작자가 고압적인 관리가 마지막에 인간성을 되찾는 모습을 모두 대사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면서 "연극은 결국 대본이 제일 중요하다.

대본이 좋고 나쁘냐에 따라서 작품의 성패가 갈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본과 대사 속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찾아보는 것도 이번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뒷일을 기약하라'를 '앞일을 기약하라'고 엉뚱하게 바꿔 말하는 검열관의 대사나, 냉혹한 검열관이 까마귀 상처를 치료해준다는 설정 등으로 모순적인 검열관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송승환은 "그런 대사와 상황을 통해 검열관이 변해가는 모습을 굉장히 잘 묘사한 대본"이라며 "까마귀 설정도 검열관이 본성은 선한 사람이면서도 일부러 위악을 하는 캐릭터라는 점을 잘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웃음의 대학'은 다음 달 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