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가정집 평면도 같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름이…
입력
수정
[arte] 정기현의 탐나는 책
우케쓰 (리드비, 2022)
평면도: 어느 공포 소설가가 고른 상상의 문
이런 대화 가운데 놓인 평면도는 더 이상 납작하지 않다. 나의 머릿속에서도 너의 머릿속에서도 우리는 평면도 위에 벽을 세우고 침대를 놓았다 빼 보고 책꽂이를 이쪽 벽에 붙였다 저쪽 벽에 붙였다 한다. 평면도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상상의 장치다. 누구나 평면도를 입체로 만들고 그 안에 많은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단지 그것을 내려다보는 행위만으로도. <이상한 집>의 저자 우케쓰는 일본의 호러·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그는 공포소설 <이상한 집>의 바탕이 되었던 영상이 1000만뷰를 돌파하는 등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일본의 부동산 미스터리 등의 제목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소설로 만들어진 <이상한 집>은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다음 장을 넘기면 한 주택의 1층과 2층의 평면도가 수록돼 있다. 이런 안내의 말과 함께.“당신은 이 집의 이상한 점을 알겠는가. 아마 얼핏 봐서는 아주 흔한 가정집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구석구석 살펴보면, 집 안 여기저기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리라.”
화자는 독자들에게 1층과 2층의 평면도를 가만히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위화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라고. 2층의 아이 방은 지나치게 고립돼 있고 1층의 욕실 오른편에는 왜 있는지 모를 폐쇄된 공간이 존재한다. 화자의 제안대로 두 장의 평면도를 겹쳐 보니 마침내 평범한 가정집이라기엔 이상한 구석들이 고개를 내민다. 우리는 화자가 평면도를 두고 벽을 세우고 숨겨진 통로를 만들고 그것을 또다시 무너트리는 기이한 추론들을 따라가며 함께 그 안으로 진입한다.
진실은 결코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쪽에서 한 발짝 더 내디디면 겨우 한 조각을 더 내어 주는 식으로 진상은 서서히 밝혀진다. 그 과정의 긴박함은 누구에게나 단순히 소설을 읽어 내는 행위 이상으로 생생할 텐데, 그것은 이 공포 소설가가 평면도를 소설로의 입장문이자 내내 전개를 도와줄 장치로 선택한 덕분일 테다.
나는 우케쓰의 책에서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평면도라는 장치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든든한 조력자처럼 있어 주어 좋았다. 이사 갈 집의 평면도를 바라보며 아직 눈앞에 없는 집을 그려 보던 익숙한 연상법을 나는 <이상한 집>에도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연상법은 내게 그랬듯,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쉬운 진입로가 되어 줄 것이다.
어느새 평면도가 아닌 입체 디오라마가 된 집 안, 한밤에 수상한 인물이 고요히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손에 무기처럼 보이는 기다란 물건을 쥐고 감춰진 문 안으로 들어가는 그……. 이쯤 되니 바라는 것은 하나. 이사 갈 집의 평면도에서 기묘한 공간을 발견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럼 그로부터 끝없는 의심과 끔찍한 상상이 피어날 테고, 이사를 기다리는 마음이 하루아침에 영 달라지고 말 것이다.
정기현 민음사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