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극단주의는 합법·민주주의의 가면 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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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21년 1월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의회의사당에 난입했다. 트럼프의 독려와 함께 시위대는 의사당 유리창과 문을 부수고 들어가 상원의장석을 점거했다. 자국민에 의해 의사당이 피해를 입은 건 미국 역사상 최초였다.
스티븐 레비츠키 외 지음
박세연 옮김/어크로스
440쪽|2만2000원
폭도에게 점령된 美 의회의사당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 난입
의사당 상원의장석까지 들어가
"민주주의 급격한 후퇴의 증거"
시대정신 반영하지 못한 헌법
소수 특권층 위한 제도가 원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이 같은 사태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미국 정치학자들의 고민이 담겼다.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는 민주주의의 붕괴를 경고해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저자들은 트럼프와 그 지지층은 물론이고 공화당 주류 정치인까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급격히 후퇴했다”고 진단했다.저자들은 트럼프와 같은 극단주의자가 세력을 얻은 것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들이 정의하는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선거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같은 진영이라고 해도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지 않는다. 그러나 주류 정치계에 속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극단주의 세력을 묵인하거나 은밀하게 지원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파괴한다.
극단주의자의 또 다른 무기는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헌법이다.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헌법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현대에 맞지 않는 내용이 숱하다. 인구에 비례하지 않은 의석수와 간접선거나 다름없는 선거인단 제도가 대표적이다.지금의 의회 구성과 선거인단 제도는 과거 노예 소유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라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당시 노예제를 둔 주는 투표할 수 없는 노예들도 투표 인구로 인정해 더 많은 의석을 얻었다. 여기에 의석수에 비례한 선거인단 제도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대선에 더 큰 영향력을 휘둘렀다. 그 결과 남부와 백인의 표만으로 다수 의석과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여성과 유색인종에게 혐오를 쏟아내고도 권력을 쟁취할 수 있던 이유다.
극단적인 소수가 득세한 결과 변화를 향한 다수의 의지가 묵살되는 일이 일어났다. 트럼프가 대통령 시절 임명한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원은 헌법이 보장한 임신중단권을 폐기했다. 실제로는 전체 미국인 중 55%가 낙태 합법화에 찬성했다.
필리버스터 역시 원래 국회에서 다수파 독주를 막기 위해 소수 의원이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방법이지만 요즘은 극단적 소수파가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우려다.물론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수의 힘을 제한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적은 표를 얻은 이가 많은 표를 얻은 이 대신 공직에 오르고, 의회 다수가 결정한 법안이 소수 의원에게 가로막히는 등 소수에게 끌려다니는 민주주의 역시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고 하기 어렵다. 저자들은 소수에 대한 보호와 특권을 가진 소수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제도를 엄연히 구분해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