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 안 작은 섬에서 만든 기적…'탱크' 최경주, 한국 골프 역사 새로 썼다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 최종R

최경주, 자신의 생일에 연장 끝 우승
대회 4승·개인30승·KPGA 최고령 우승 '신기록'

창립 40주년 맞은 SK텔레콤, 최경주 우승에 '겹경사'
사진=KPGA
54번째 생일을 맞은 노장의 걸음걸이는 유독 무거워보였다. 이틀 전 홀로 7언더파로 질주했던 사실이 무색하게 이날은 내내 답답한 흐름을 이어갔다. 경기 후반부터는 허리에 통증도 더해졌다.

그래도 노장은 두번의 연장으로 이어진 승부에서 끝내 이겼고, 한국 남자골프의 역사를 새로 썼다. 19일 막 내린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탱크' 최경주(54)가 주인공이다. 최경주는 자신의 생일에 이 대회 4번째 우승, KPGA투어 통산 17승을 거뒀다. 해외에서 거둔 13승을 포함하면 개인 통산 30번째 우승이다.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도 만 50세 5개월 25일(2005년 최상호)에서 3년 8개월이나 늦추며 '살아있는 전설'임을 증명해냈다.

◆러프서 천금같은 세이브 "KJ아일랜드라 불러주오"

이날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가 시작될 때만 해도 5타 창 단독선두인 최경주가 무난하게 우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러프와 벙커로 향하는 샷이 많아지면서 좀처럼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17번홀까지 보기 5개를 범하고 버디는 2개에 그치면서 3타를 잃었다.
사진=KPGA
그사이 KPGA투어 강자 박상현(41)이 보기 없이 버디만 4개 잡으며 최경주를 1타 차까지 따라잡았다. 18번홀(파4) 결과에 따라 우승, 혹은 연장으로 갈릴 수 있는 위기. 야속하게도 보기를 범하며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국 남자골프의 최고 베테랑들이 맞붙은 연장전, 분위기는 박상현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이날 최고의 샷감을 보이며 기세를 올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박상현은 연장에서도 안정적인 플레이로 두번째 샷을 그린에 올려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반면 최경주는 두번째 샷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페어웨이에서 친 최경주의 세컨 샷은 짧고, 왼쪽으로 감겼다. 그린 옆 개울 쪽으로 떨어진 공은 개울 안에 작은 섬처럼 자리잡고 있는 러프에 떨어졌다. 그린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섬, 마치 그의 고향인 완도같은 자리였다. 덕분에 벌타를 받지 않고 세번째 샷을 칠 수 있었다.
최경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59도 웨지를 잡고 가볍게 툭 친 세번째 샷은 핀 1m 옆에 붙었고 천금같은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최경주는 "샷을 치자마자 공이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갤러리의 반응을 보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며 "가보니 일부러 손으로 놓으려 해도 할 수 없을 라이를 주셨더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샷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평생 못 잊을 장면이 될 것"이라며 "이 작은 섬에 'K.J. Choi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진 연장 2차전, 최경주의 건재에 박상현이 위축된 듯 했다. 티샷이 러프에 빠진데 이어 두번째 샷도 그린 주변 러프로 향하면서 보기를 범했다. 반면 최경주는 두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면서 파를 잡아 우승을 확정지었다.

◆"PGA투어서 500 경기 출전 기록 목표"

최경주의 우승에 그의 후원사인 SK텔레콤도 '잔칫집'이 됐다. 올해는 SK텔레콤 창립 4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3월 SK텔레콤 소속인 김재희가 자신의 생일인 10월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오픈에서 우승한데 이어 이번에는 최경주가 한번 더 생일에 SK텔레콤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겹경사를 만들었다.

자신의 생일에 거둔 생애 30번째 우승, 그리고 KPGA투어 최고령 우승이라는 대기록에 '탱크'마저 눈시울을 붉혔다. "(제 후원사인)SK텔레콤이 40주년을 맞은 해, 그리고 제 생일에 대회 4승,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최경주목소리는 감격에 목이 메어 있었다.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겠다 생각했다"며 "팬들의 성원덕에 거둔 우승인 만큼,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이제 자신의 본 무대인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로 돌아간다. PGA투어에서는 498경기를 출전한 최경주는 앞으로 2경기를 더 채워 5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최경주는 "500경기를 채우면 PGA 투어에서도 기념행사를 열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역대 챔피언 자격으로 나갈 수 있는 대회에서 이 기록을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