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대항마 떴다…독학으로 로켓 개발한 '괴짜 천재' [강경주의 IT카페]

[강경주의 IT카페] 137회
스페이스X 독점 깬다…발사체 시장 경쟁 불 붙인 로켓랩

스페이스X 대안으로 부상한 발사체 기업 '로켓랩'
조롱받던 '뉴질랜드 촌뜨기' 피터 벡 CEO
고졸 출신에 독학으로 로켓 개발한 '괴짜형 천재'
일론 머스크 대항마 부상하며 과학계서 존재감
부품 최소화하고 자체 발사장 보유해 가격 경쟁력↑
일렉트론 추력 모습 / 사진=로켓랩
지난달 24일 오전 7시32분 뉴질랜드 마히아 발사장. 국내 최초 양산형 초소형 군집위성인 '네온샛 1호'가 로켓랩의 일렉트론 발사체에 실려 힘차게 솟아올랐다. 오후 3시44분 남극 세종과학기지 지상국과 교신에 성공하자 위성을 제작한 KAIST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 우주 개발의 한 페이지가 장식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네온샛 발사 성공을 바란 사람은 또 있었다. 일렉트론 제작사인 로켓랩 창업자 피터 벡 최고경영자(CEO)다. 국내 위성이 로켓랩의 발사체를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터 벡 로켓랩 CEO는 누구

17일 업계에 따르면 로켓랩은 뉴질랜드 출신인 벡 CEO가 2006년 설립한 민간 로켓 회사다. 과학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벡 CEO는 로켓을 만들고 싶다는 꿈만 가지고 무작정 로켓을 독학해 창업까지 한 '괴짜형 천재'다. 그느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현장에서 소재와 가공 기술을 손으로 익혔다. 몸으로 터득한 로켓 엔지니어링을 바탕으로 2006년 30세에 로켓랩을 창업했고, 2009년 자신이 개발한 최초의 로켓인 '아테아-1' 발사에 성공하며 남반구 기업 최초로 로켓을 우주에 진입시켰다.
피터 벡 로켓랩 CEO가 일렉트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로켓랩
2013년 벡 CEO는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백방으로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그에게 시간과 돈을 쓰려는 투자자는 없었다. 당시 실리콘밸리 벤처업계에선 벡 CEO를 가리켜 '미친 키위(crazy kiwi)'라고 불렀다. 벡 CEO가 뉴질랜드 출신인 점과 연구자의 정통 코스를 밟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비꼰 것이다.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자 벡 CEO는 2013년 본사를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겼다. 이후 록히드마틴의 눈에 띄어 투자를 유치했고, 2017년 로켓랩 소형 로켓 일렉트론을 앞세워 상업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음해에 바로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총 3기의 큐브 위성을 쏘아 올리는 690만달러짜리 계약을 성사시켰다. 2021년에는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주력 발사체 일렉트론 수요 급증

로켓랩의 주력인 일렉트론은 높이 17m, 지름 1.2m, 무게 12.5t에 불과한 2단 액체 소형 로켓이다. 벡 CEO는 발사체 소재로 탄소섬유를 활용하고, 3D 프린팅 방식으로 엔진 등 주요 부품을 생산해 전체 부품 수를 1000개 수준으로 줄여 생산비 절감에 성공했다. 뉴질랜드와 미국 버지니아주에 자체 발사장을 갖춰 임차 비용도 아꼈다. 고객의 발사 시점을 탄력적으로 소화해 저궤도까지 소형 위성을 쏠 수 있다는 점을 홍보했다. 최근 위성 시장이 저궤도 소형 군집 중심으로 바뀌면서 일렉트론의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로켓랩 엔지니어들이 일렉트론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로켓랩
탑재 중량이 300㎏인 일렉트론의 1회 발사 비용은 750만달러, ㎏당 발사 비용은 2만5000달러다. 스페이스X의 주력 발사체 팰컨9의 ㎏당 2938달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유연하게 발사 시점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을 앞세워 팰컨9의 대체 수요를 일부 흡수했지만 경쟁 상대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일렉트론도 스페이스X처럼 재사용 발사체로의 전환을 위한 연구개발(R&D)에 착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벡 CEO는 일렉트론의 1단 로켓(부스터)을 회수해 재사용하면 비용 절감은 가능하겠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로켓랩이 추구하는 재활용 방식은 스페이스X와는 전혀 다르다. 스페이스X는 엔진을 역추진해 수직으로 착륙장에 내려앉는 방식이지만 일렉트론은 소형 로켓이기 때문에 역추진 엔진이나 연료를 실을 공간이 없다. 2018년 벡 CEO는 CNBC 인터뷰에서 "우리가 재사용 로켓을 개발한다면 모자를 먹겠다(I will eat my hat)"고 말하기도 했다. 직역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사용 발사체는 '로켓 덕후'인 벡 CEO의 마음에 조금씩 파고들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2018년 재활용 기술 개발에 착수했고, 2019년 일렉트론 재활용 기술을 처음 테스트했다. 2020년 11월 낙하산을 매달아 바다에 떨어지는 1단 로켓을 헬리콥터로 낚아채는 방식으로 회수에 성공했다. 벡 CEO는 이듬해 3월 1일 트위터에 모자를 썰어 먹는 모습을 공개하며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공식화했다.
피터 벡 로켓랩 CEO가 뉴트론 페어링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로켓랩

몸집 키운 뉴트론으로 스페이스X 팰컨9 겨냥

벡 CEO는 일렉트론보다 더 큰 로켓인 뉴트론으로 스페이스X의 팰컨9을 겨냥해 재사용 발사체 시장에서 경쟁하겠다는 구상이다. 뉴트론의 재사용 방식은 일렉트론과는 다르다. 길이 42.8m에 총중량이 480t인 뉴트론은 70m 길이에 549t인 팰컨9과 마찬가지로, 2단 로켓과 분리된 1단 로켓이 지상에 수직 착륙한다. 1단 로켓 한 대를 10~20회 재사용하는 것이 목표다. 팰컨9의 재사용 횟수와 비슷하다.

뉴트론은 외관이 뚱뚱하고 페어링(로켓 머리 부분) 내부 공간도 넉넉하다. 페어링 크기를 키운 것은 유인 우주선 발사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뉴트론의 1단 로켓에 장착되는 9개의 아르키메데스 엔진은 3D 기술로 제작됐으며 연내 연소시험을 거칠 예정이다.애덤 스파이스 로켓랩 최고재무책임자는 "로켓랩의 발사 선주문 누적 계약액이 1년 전 2억4100만달러에서 현재 5억300만달러로 불어났다"며 "내년에 상용화해 팰컨9과 직접 대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팰컨9의 1회 발사 비용은 6700만달러이고, 로켓랩이 개발하는 뉴트론은 5000만~5500만달러"라며 "㎏당 발사 비용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로켓랩 공장 내부 / 사진=로켓랩
스페이스X의 운영 방침이 향후 초(超)중량 발사체인 스타십으로 옮겨갈 경우 뉴트론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 된다는 분석도 보탰다. 발사체 재활용 기술을 확보한 로켓랩이 안정성을 확보하고 경제성까지 높인다면 독점 체제였던 재사용 발사체 시장이 사상 처음 경쟁 체제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시장을 독점해온 스페이스X의 유일한 대항마가 될 것이란 전망에 업계에선 일론 머스크의 진짜 경쟁자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아니라 벡 CEO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주 발사체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우주 발사체 시장 규모는 2022년 142억1000만달러에서 2030년 319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재사용 발사체 시장은 같은 기간 16억1000만달러에서 54억1000만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업계 관계자는 "로켓랩은 검증된 발사 역량과 낮은 비용을 앞세워 소형 발사체 시장을 잠식하는 등 스페이스X의 빈틈을 채워가며 강자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투자보고서에서 "많은 발사체 기업이 등장했지만, 스페이스X와 로켓랩 두 회사만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운영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일렉트론과 뉴트론 비교 / 사진=로켓랩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