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도 경계인도 없다… 다양한 문화로 꽃피우는 K-컬쳐

문화체육관광부 21일부터 ‘2024 문화다양성 주간’ 운영
이주민 이슈 등 포용과 공생 의미 살리는 콘텐츠 선봬

체류 외국인 259만 명 한국, 올해부터 다문화 국가 진입
안나 예이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 접할 수 있어야”
지난해 열린 '2023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모습. /문체부
가수 인순이(67)는 1979년 여성 3인조 그룹 희자매로 데뷔할 당시 한동안 모자나 두건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흑인계 혼혈 특유의 자연 곱슬머리를 두고 방송사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단일민족이란 동일성을 자랑스럽게 가르치던 당시 분위기에선 순혈성을 해치는 외모는 사회적·문화적 얼룩이었던 받아들여진 셈이다.

45년이 지난 오늘날 방송가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글로벌 음악시장을 주무르는 K팝 그룹들의 출신이 다양하다.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며 한류 전도사 역할을 하는 블랙핑크만 해도 한국, 태국, 한국·뉴질랜드 이중국적이다. 해외에서 K팝 유학길에 올라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는 유망주도 많다. 출신이 다르고 겉모습에 차이가 있어도 한국이라는 틀 안에서 어우러지며 역동적인 K-컬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난해 열린 '2023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에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어우러져 참여하는 모습. /문체부
한국은 올해 공식적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20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 체류외국인은 259만4936명으로 전체 인구(5128만5153명)의 5.0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규정하는 다문화사회 기준인 5%를 넘긴 것이다. 아시아에서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저출생으로 인구 정체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사회 구성원이 된 외국인이 늘어난 결과다.

‘10주년’ 문화다양성 주간, ‘공생’ 의미 되살린다


북미나 유럽 여러 나라들처럼 다문화 국가에 들어섰지만 사회적 인식 변화 속도는 아직 더디다. 난민, 불법체류, 종교 간 충돌처럼 우려점도 적잖다. 이민정책이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서 정부가 21일부터 일주일간 ‘2024 문화다양성 주간’을 운영하는 이유다. 이해돈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은 “일상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구성원을 마주할 수 있기에 문화다양성 가치가 중요하다”면서 “문화다양성 주간에서 이주민에 대한 환대와 포용, 공생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2023 문화다양성 주간'에서 다양성 가치 실현에 앞장서 온 인사들이 연사로 참여해 토크콘서트가 열리는 모습. /문체부
문체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개최하는 문화다양성 주간은 문화다양성에 대한 국민 이해를 높이기 위해 2015년부터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에 맞춰 매년 5월 21일부터 일주일간 운영하는 행사다. 10주년을 맞이한 올해, 한국이 다문화 국가에 진입했단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지난 10년간 다문화를 주제로 한 콘서트와 청년토론, 체험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이주민 문제부터 세대, 지역 등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왔기 때문이다.‘환대-경계에 꽃이 핀다’를 주제로 열리는 올해 문화다양성 주간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개막행사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한국계 캐나다인 안소니 심 감독이 한국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 ‘라이스 보이 슬립스’가 상영된다. 서울대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선 문화다양성 시대를 맞이한 정책·청년 토론 등이 진행된다.

독일인 소리꾼 “다양한 문화, 예술 세계 넓힌다

올해 문화다양성 주간에선 이주민 참여 확대, 미래세대 교류 강화를 위해 한국에서 문화다양성 가치를 직접 실현하고 있는 유명인들이 도서, 영상, 음악을 소개하는 온라인 큐레이션 전시도 연다. <로기완을 만났다> 등 난민, 이민자, 입양인 등 경계인이자 소수자의 삶을 다룬 작품을 다수 발표한 조해진 작가와 한국살이 22년 차 독일 출신 기자 안톤 슐츠 등 9명의 전문가가 88편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소개한다.
국악 연구가인 안나 예이츠 서울대 교수. /문체부
독일에서 온 국악인으로, 서울대 국악과 최연소 조교수에 임용된 안나 예이츠 교수도 스페셜 큐레이터로 나와 눈길을 끈다. 예이츠 교수는 영국 런던에서 접한 판소리에 빠져 2015년부터 한국에서 판소리 등 국악을 연구하며 10년째 한국살이 중이다.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이츠 교수는 “문화다양성은 언제나 관심 있는 이슈였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도 점점 다양해지는 세계를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문화다양성 주간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최근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어울리려 노력하고, 한국인들도 이를 받아주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예이츠 교수는 사회·경제·안보뿐 아니라 문화예술 측면에서도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판소리를 대표하는 한(恨)이 특수성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란 점에서 한국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라며 “연구자로서 만나는 한국의 예술인들이 다른 문화에 열려 있는데, 이런 점에서 한국 예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린 시절부터 여러 문화를 대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걸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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