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무대에 선 배우들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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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900년.
햄릿 역 맡은 강필석, 이승주 인터뷰
공연은 6월9일부터 9월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연극 ‘햄릿’에 출연하는 24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른 시간이다. 배삼식이 극본, 손진책이 연출을 맡은 이 공연은 2016년 초연과 2022년 재연 이후 오는 6월 세 번째 공연을 연다. 배우 전무송, 이호재, 박정자, 손숙 등 수십년간 한국 연극 역사를 장식한 대배우들과 신예 배우가 합을 맞출 예정이다.대선배들 앞에서 연극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쳐야 하는 햄릿. 이 무거운 왕관을 받아 든 배우 강필석과 이승주를 만났다.
20년 무대 올랐지만, 여전히 ‘병아리’
이승주와 강필석은 10년 넘게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다. 강필석은 1997년 데뷔한 이후 연극 ‘아트’, ‘로미오와 줄리엣’과 뮤지컬 ‘스위니 토드, ‘광화문연가’ 등의 작품으로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이름을 알렸다. 2년 전 공연 이후 두 번째로 햄릿 역을 맡는다.이번에 처음으로 햄릿을 연기하는 이승주는 2008년 KBS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0년 ‘쉬어 메드니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연극배우로서 무대에 올랐다. ‘와이프’, ‘벚꽃동산’, ‘세일즈맨의 죽음’, ‘엠.버터플라이’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관객과 만났다.도합 30년이 넘는 짧지 않은 경력. 그런데도 강필석과 이승주는 입을 모아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아기가 된 기분이라고 한다.
햄릿 역을 처음 제의받은 이승주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대선배들 앞에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는 의문에 고민을 거듭했다.그가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깨에 짊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승주가 배우라는 꿈을 심어준 작품이 바로 ‘햄릿’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대가로 불리는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1948년 개봉작 ‘햄릿’을 본 그는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너무 우아하고, 모든 대사 하나하나가 시처럼 들렸다”며 “언젠가 저런 배우가 될 수 있을까는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대선배들 앞에서 햄릿을 연기한다는 생각에 무서웠지만 지금 거절한다면 평생 후회하면서 살 것 같다는 생각에 역을 받았죠. 설사 잘하지 못하더라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출연인 강필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2년 전 공연을 떠올리며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받은 햄릿 역할이었는데 ‘내가 미친 도전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나는 대선배들 사이 '병아리'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처음 독백 장면을 연습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오디션처럼 선배들이 제 앞에 나란히 앉아 지켜봤어요. 5분짜리 대사였는데 3일 동안 서 있는 줄 알았어요.”
햄릿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준비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강필석. 고된 연습 끝에 첫 무대를 마치고 커튼콜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2년 만에 다시 햄릿의 왕관을 쓸 준비를 시작했다.
연기는 사람 지문 같아… 각자 매력 지닌 햄릿 만날 것
개막을 3주 앞둔 두 배우는 자신만의 햄릿을 찾아가는 중이었다.서로 다른 점까지도 각자의 햄릿을 만드는 재료였다. 강필석은 “햄릿은 특히 독백이 많은 역할이라 더욱 배우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심지어 2년 전 자신이 햄릿과 이번에 무대에 오를 햄릿도 달라질 예정이라고.
“2년 전에는 개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고통스러워서 내가 고민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연출께서 웅변하듯이 대사를 하라는 지도를 받았어요. 개인의 얘기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이승주는 “각자에게 맞는 감정과 동작이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지도를 받고 있다”며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 같은 배역을 맡아도 모두가 다른 햄릿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극복할 수 없는 차이는 있었다. 강필석은 오른손잡이, 이승주는 왼손잡이다. 두 배우는 극 중 칼싸움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펜싱 훈련을 받고 있다. 상대역과 합을 고려해 왼손잡이인 이승주는 어쩔 수 없이 오른손으로 싸우는 연습을 해야 했다.
“왼손으로 싸우면 관객을 바라보고 싸울 수 있어서 오히려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술감독님이 오른손으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첫 연습이 끝나고는 밥 먹기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대선배들 보고 연극배우로서 가치관 고민…연극 계승 노력할 것
이들의 고민은 햄릿에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대선배들과의 경험은 배우로서 가치관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두 배우 모두 윗세대 선배들이 그랬듯이 동료와 후배들에게 무대를 향한 애정을 나누고 이어가야겠다는 결심을 말했다.강필석은 “선배들이 연극을 준비하는 자세, 그리고 후배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반성하게 됐다"며 “선배들이 쌓아온 역사를 이어가고, 동료와 후배들을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이승주는 ‘햄릿’을 보러오는 관객이 한국 연극 역사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연극 역사의 산증인인 대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좋은 작품으로 관객들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와 뼈를 갈아서 준비하겠습니다.”연극 ‘햄릿’은 6월9일부터 9월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공연 리뷰] “죽느냐, 사느냐” 고민하다 다 죽네 …연극 ‘햄릿'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