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힘'은 국적불문의 유연성…문화 외연 더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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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문화다양성 주간 운영가수 인순이(67)는 1978년 여성 3인조 희자매로 데뷔했을 당시 한동안 모자나 두건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가르치던 사회 분위기에서 흑인계 혼혈 특유의 자연 곱슬머리는 ‘방송 불가’였기 때문이다. 46년이 지난 오늘날 방송가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인기 가수 블랙핑크 멤버들은 한국, 태국, 한국·뉴질랜드 이중 국적으로 출신이 다양하지만 K팝 그룹으로 묶인다. 배경이 달라도 한국이라는 틀 안에서 어우러지며 역동적인 K 컬처를 이루는 것이다.
'환대-경계에 꽃 핀다' 주제로
문화다양성 콘텐츠 집중 소개
한국은 올해 다문화 사회로 들어섰다. 20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9만4936명으로 전체 인구(5128만5153명)의 5.0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규정하는 다문화 사회 기준인 5%를 넘겼다. 아시아에서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다문화 국가가 됐어도 사회 인식 변화 속도는 더디다. 이민 정책이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서 정부가 21일부터 1주일간 ‘2024 문화다양성 주간’을 운영하는 이유다. 이해돈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은 “일상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구성원을 마주할 수 있기에 문화다양성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2015년부터 유엔이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에 맞춰 매년 5월 21일부터 1주일간 문화다양성 주간을 운영 중이다. 올해 10주년을 맞는 문화다양성 주간은 한국이 다문화 국가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10년 다문화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이주민, 세대, 지역 등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왔기 때문이다.‘환대-경계에 꽃이 핀다’를 주제로 열리는 올해 주간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개막 행사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한국계 캐나다인 안소니 심 감독이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 ‘라이스 보이 슬립스’가 상영된다. 문화다양성 시대를 맞아 정책·청년 토론 등도 진행된다.
올해 문화다양성 주간에서는 한국에서 문화다양성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유명인들이 도서, 영상, 음악을 소개하는 온라인 큐레이션 전시도 선보인다. <로기완을 만났다> 등 난민, 이민자, 입양인 등 소수자의 삶을 다룬 작품을 다수 발표한 조해진 작가 등 전문가 9명이 문화예술 콘텐츠 88편을 안내한다.
독일에서 온 국악인 안나 예이츠 서울대 교수가 스페셜 큐레이터로 나선다. 예이츠 교수는 영국에서 접한 판소리에 빠져 2014년부터 한국살이 중이다.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이츠 교수는 “문화다양성은 늘 관심 있는 분야였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점차 다양해지는 세계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예이츠 교수는 사회·경제·안보뿐 아니라 문화예술 측면에서도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판소리를 대표하는 한(恨)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 아니겠느냐”며 “연구자로서 만나는 한국 예술인들이 다른 문화에 열려 있는데, 이런 점에서 한국 예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i91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