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 거부하고 묵묵히 살아낸 아버지의 슬픔, 콘크리트 조각에 담다

서울 여의도동 삼천리빌딩
'천만 아트 포 영' 공모수상전
5월 31일까지
회사의 명예퇴직 권유를 거부한 아버지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혹독했다. 업무에서 배제된 아버지는 연고 없는 지방 지사로 전보됐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9년을 버텼다.

그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김시온 작가는 설치 작품을 제작했다. 주 재료는 재개발 지역에서 수집한 콘크리트 파편들. 한때 누군가의 집을 이루는 든든한 벽이었던 콘크리트가 조각나 떨어진 그 모습은 아버지의 움츠린 어깨를 연상시켰다. 김 작가는 그 위에 종을 달아 위태롭게 흔들리도록 했다. 작품 제목은 ‘온 곳으로 신호를 보내며’라고 달았다. “가장으로서 ‘아직 남아있는 쓸모를 증명하듯’ 지방에서 가족들에게 연락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이렇게 만든 김 작가의 작품(사진)이 지금 서울 여의도동 삼천리빌딩에서 열리고 있는 ‘천만 아트 포 영’ 공모수상전에 나와 있다. ‘천만 아트 포 영’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젊은 작가들의 수작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심사위원회는 김 작가에게 최고상을 주며 이렇게 평가했다. “지속적인 긴장과 불안 상태에서도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완성도 높게 표현했다.”
천만장학회는 고(故) 이천득씨와 이만득 현 삼천리그룹 회장 두 형제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이곳은 ‘천만 아트 포 영’ 프로젝트를 통해 회화, 조각, 공예, 디자인, 뉴미디어 등 현재 시각예술 전분야의 학부나 대학원에 재학 중인 전공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시 기회를 주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 말까지 실시한 공모에 지원한 작가는 712명. 로렌 영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와 토모코 야부매 도쿄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등 국내외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 최종 33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최고상인 천(天)은 김시온, 지(地)는 강현진·성유진 그리고 해(海)는 강민서·정서연·최지수에게 돌아갔다. 천 수상자는 장학금 1000만 원, 지 수상자는 700만원, 해 수상자는 500만원, 27명의 인 수상자는 한 사람당 300만원을 각각 받게 됐다. 여기에 더해 전시 기간 투표를 진행해 인기상 1명을 선정하고 추가 장학금을 제공한다.

전시는 31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