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전투기 몰고 전투, 오후엔 출근한 이스라엘 예비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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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군사혁신'중동의 화약고'에 붙은 불씨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벌어진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0일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중동 정세가 한층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 모양새다.
에드워드 러트웍·에이탄 샤미르 지음
정홍용 옮김 / 플래닛미디어
488쪽│2만9800원
이스라엘 국방력 비결은 '46만 베테랑 예비군'
혼란스러운 주변 정세에도 이스라엘은 선방하고 있다. 지난달 이란의 대규모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90% 이상 요격하며 방위체계의 성능을 입증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도 전년 동기 대비 14.1% 늘었다. 민간 지출과 투자 부문에서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4분기에 쪼그라든 경기가 다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최근 출간된 <이스라엘의 군사혁신>은 그 비결을 이스라엘의 탄탄한 국방력에서 찾는다. 가브리엘 미사일과 아이언돔, 메르카바 전차 등 독자적인 방위 체계부터 세계 최강 수준의 예비군 전력 등. 이스라엘이 국제적인 고립과 재정난 속에서도 정예 강군을 만들 수 있었던 16가지 군사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책은 군사전략과 전쟁사, 국제정치 등 폭넓은 주제를 파고든다. 미국의 군사 전문 저술과 에드워드 러트웍, 에이탄 샤미르 베긴샤다트 전략연구센터장 등 전문가들이 공동 저술한 결과다. 합참 전략기획본부에서 20여년간 복무하고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지낸 정홍용 장군의 번역이 복잡한 군사 용어를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스라엘 군대의 혁신은 결핍에서 비롯했다. 책은 이스라엘이 건국한 1948년 5월 14일부터 돌아본다.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주변 아랍 국가들로부터 공격받았다. 인구 65만의 농업국가였던 이스라엘은 대원 3명당 무기 1개를 지급해야 하는 등 열악한 여건에서 아랍을 상대해야 했다. 진짜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나고부터였다. 아랍 국가들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노렸지만, 인구가 적은 이스라엘은 이에 맞설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예비군 중심 구조를 채택하게 된 이유다. 현재 이스라엘 방위군은 상비군 17만여명, 예비군은 46만5000여명에 이른다. 남성은 40~45세까지, 여성은 34세까지 예비군으로서 연간 55일 훈련한다.
이들 대부분은 현역 때 레바논 전쟁과 엔테베 작전, 시리아 핵시설 파괴 작전 등을 경험한 베테랑이다. 지난달 이란의 미사일 공습 당시에도 한 예비역 소령이 새벽에 F-15 전투기를 몰며 드론을 격추하고, 그날 오후 사무실로 출근해 일과를 봤을 정도다.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예비군 전력이 "900만 인구의 이스라엘이 4억5000만명 아랍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이라고 말한다.
책을 번역한 정홍용 장군은 "이스라엘의 선례를 무조건 답습하기보다, 한국군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할 것"을 주문한다. 예컨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국이 이스라엘에 파병하거나 전투에 참여하는 걸 거부했다. 군사 동맹보다 속전속결 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우선시한 결과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전제하는 국군의 작전계획에 무작정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군사혁신 사례는 한국군에 시사점을 준다. 두 나라는 좁은 영토와 적은 인구로 '작지만 강한 정예 강군'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3면이 아랍에 의해 포위됐다는 점에서도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 둘러싸인 한국과도 비슷하다. 특히 출산율 저하로 상비군 전력이 줄어드는 국군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의 강력한 예비군 체제는 미래 대안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