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인플루언서 된 아싸 교수, 관종의 악몽 그린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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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의 신작 영화 '드림 시나리오' 리뷰일상이 자극으로 가득 찬 '도파민 중독 시대', 시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대학에서 진화생물학 교수로 일하는 폴 매튜(니콜라스 케이지)가 그 주인공. 트렌드나 유머에는 관심없는 성격에 외관도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그는 두 딸들과 주위 동료들에게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벼락 인플루언서가 된다. 온갖 사람들의 꿈에 뜬금없이 등장하면서다.
폴의 페이스북에는 "꿈에서 당신을 봤다"는 이들로 가득차고, 그의 존재는 곧 '밈'이 된다.셀럽이 된 폴에게 전에없던 관심이 쏟아진다.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당신과 꿈에서 사랑을 나눴다"며 접근하는 일도 생기고, 세계적인 브랜드가 "콜라보를 하자"며 광고를 제안한다. 세간의 관심에 폴은 얼떨떨했지만, 그 역시 인정욕구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폴도 본인이 집중하는 개미 연구의 가치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고, 자신의 수업이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유명해지면 덕을 볼 수 있을거라 은근히 기대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미묘한 폴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우리도 아마 그럴 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그렇듯, 폴 역시 내가 유리할 정도의 적당한 관심을 원하는 '은근한 관종'이었다.
그러나 ‘폴’이 등장하는 모든 꿈이 악몽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꼬인다. 그를 향하던 관심과 호감은 격렬한 적대감으로 바뀌고, 그의 생계를 위협하고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 "당신의 꿈일 뿐이잖아요"라고 폴이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없다. 아무리 진솔하게 호소해봐도 "공감능력이 없다"며 폴에게는 공감해주지 않는다. 바이럴의 효과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더욱 커지는 법. 결국 가족들조차 그에게 등을 돌린다. 이유없이 찾아온 유명세는 반대로 아무 이유없이 그의 삶을 파괴해버린다.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아무런 잘못이나 책임이 없음에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비난과 공격을 받아야 하는 '캔슬 컬처'의 끔찍한 단면을 보여준다. '캔슬 컬처’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한다는 뜻으로, 유명인이나 공적 지위에 있는 인사가 논쟁이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SNS 등에서 해당 인물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하고 보이콧하는 현상. 영화 속에서 대중들은 꿈과 실제를 구분하지 않고, 사실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핵심 소재를 '꿈'으로 택한 건 그래서 적절했다. 꿈은 인과관계가 선명히 나타나지 않고, '불쾌함', '황홀함' 등 어렴풋한 감각과 감정만을 남긴다. 여기에 디지털 익명성은 한 사람을 악마화하도록 부채질한다. 디지털 린치가 가해지는 과정을 놀랍도록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이 영화는 시류에 편승해 근거 없는 비난을 쏟아내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당신들 중 누구나 폴이 될 수 있다"고.
영화에서 결국 악몽은 현실이 됐다. 단 한번도 누군가를 해친 적 없었던 폴은 자신을 혐오하고 거부하는 사람에게 항의하다가 본의 아니게 사람을 다치게 한다. 현실에서도 남을 해하는 사람이 돼 버린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어찌보면 평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아우르는 소재와 풀어내는 방식이 한번쯤 살펴볼만 하다. 영화 내내 꿈과 현실이 불쑥불쑥 뒤바뀌기도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해지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폴 역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드림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대중의 시선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점에서 나는 ‘폴’을 연기하는 데 필요한 삶의 경험을 갖추었다. ‘폴’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들을 이미 느꼈다”고 전하며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드림 시나리오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 라이브즈’ 등 재미와 작품성 모두를 잡는 제작사로 손꼽히는 A24가 제작을 총괄했다. 제81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고,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29일 개봉, 102분. 최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