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농망법' 강행 처리한다는 거대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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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법 개정시 쌀값 폭락할수도“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법, ‘농망법’입니다.”
농민단체 47곳도 줄줄이 반대
박상용 경제부 기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가격 안정법(농안법) 개정안 얘기가 나오자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냈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값이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될 때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농안법 개정안은 양곡 과일 채소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기준 미만으로 하락하면 정부가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급하는 ‘가격 보장제’가 핵심이다. 민주당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들 법안을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송 장관은 “법이 시행되는 상황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얼핏 봐서는 농민을 위한 ‘착한 법’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송 장관은 강조했다. 정부가 남는 쌀은 무조건 사주고, 가격까지 보장해주면 자연스레 쌀농사를 지으려는 농민이 많아진다. 논농사는 기계화율이 99.3%에 이를 정도로 영농 편의성이 좋다. 쌀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면 쌀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은 24년째 ‘쌀 공급 과잉’ 상태다. 작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56.4㎏)은 1990년의 반 토막 수준까지 떨어졌다. 쌀뿐만 아니라 가격 보장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과일, 채소 등으로 생산이 쏠리면 농산물 전반의 수급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 이 경우 가격 불안정성은 더 심해진다.
정책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도 문제다. 농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매입비와 보관비로 소요되는 금액만 연 3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5대 채소류에 대해 가격보장제를 시행하면 연평균 1조200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가격 보장 품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보장 품목이 늘어나면 소요 예산은 더 불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청년 농업인, 스마트 농업 육성 등 농촌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송 장관이 이들 법안을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농민단체도 공개적으로 줄줄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대한한돈협회, 한국과수농협연합회 등 총 47개 단체가 반대 성명을 냈다. 정부는 법안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송 장관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야당은 거부권 횟수가 늘어났다고 비판할 것이고,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성과로 내세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대 야당은 지금이라도 농민의 미래보다 정쟁을 우선한다는 비판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