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와 벙커는 훌륭한 놀이터"…콘서트장 변신한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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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콘서트' 20회 맞는 최등규 서원밸리CC 회장

골프장을 공연·소풍 공간으로
"소중한 것 내놓는 게 진짜 기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지켜나갈 것"
매해 5월 마지막 토요일, 경기 파주시 광탄면 서원밸리CC는 전국과 해외에서 수만 명의 손님이 찾아오는 잔칫집으로 변신한다. 명문 회원제 골프장 코스를 전면 개방해 개최하는 무료 뮤직페스티벌 ‘그린콘서트’가 열리면서다. 밸리코스 1번홀은 콘서트 무대가 되고 페어웨이 곳곳에서 가족들이 소풍을 즐긴다. 벙커는 어린이들의 씨름장으로 변신한다.

오는 25일, 스무 번째 그린콘서트가 열린다. 올해는 김재중 장민호 백지영 한해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 가수들이 출연한다. 최등규 대보그룹·서원밸리CC 회장(사진)은 21일 “그린콘서트를 앞두고 매일 설레는 마음”이라며 “올해도 사고 없이 안전하게 치를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칠순의 사업가는 청년처럼 상기된 표정이었다.2000년 5월 지역주민 1520명이 참석해 단출하게 시작한 그린콘서트는 이제 4만여 명이 찾는 자선 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까지 누적 53만350명이 그린콘서트를 즐겼고 바자, 먹거리장터 등에서 나온 수익 6억3176만원은 기부됐다. 그는 “20회를 이어온 것은 서원밸리 회원과 대보그룹 임직원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회원들이 골프 최고 시즌을 양보하고, 행사 전후의 코스 사정도 너그럽게 이해한다”며 “임직원 역시 먹거리장터와 바자, 주차장 등 곳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행사를 풍성하고 안전하게 만든 주역”이라고 치켜세웠다.

대보그룹은 휴게소를 운영하는 대보유통을 비롯해 대보정보통신, 대보건설, 서원밸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연매출 2조원, 직원은 4000여 명에 이른다. 최 회장이 ‘남의 돈으로 사업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무차입 경영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면서 대보그룹은 업계에서 알짜기업으로 꼽힌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대보그룹을 일으킨 최 회장이 그린콘서트를 구상한 것은 2000년, 서원밸리 개장을 앞둔 어느 주말이었다. 라운드를 위해 찾은 한 골프장에서 직원 자녀들이 잔디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평소 골프장은 동반자와 캐디 등 5명만 이용하는 곳으로 여겼는데 아이들에게는 잔디와 벙커가 훌륭한 놀이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골프장 개장 이후 ‘단 하루라도 아이들이 넓은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날을 만들어주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골프장 하루 매출, 행사 비용, 코스 복구 비용 등을 따지면 약 5억원이 든다. 최 회장은 “진정한 기부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것”이라며 “골프장의 소중한 자산인 잔디를 지역주민에게 내어주자”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방문객의 차를 수용하기 위해 서원힐스 동코스 9개 홀 페어웨이는 이날 하루 주차장으로 변신한다.

사업에서는 ‘호랑이 회장님’인 그이지만, 이날 하루는 ‘그린콘서트 할아버지’로 불리며 신나게 즐긴다고 했다. 그는 “그린콘서트가 20회, 30회 더 이어지는 행사가 되도록 살아있는 동안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조수영/사진=임형택 기자 delinews@hankyung.com